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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y Feb 12. 2024

어바웃 명절과 줄기

어바웃 시리즈


이번 주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빴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가, 평소에 보지 못했던 친척들과 만나고 여러 일들을 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절은 오랜만에 친척들을 보는 즐거움보다는... 제사를 지내는 집은 듣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양의 집안일을 해내야 하거나, 어른들의 '결혼은 언제 하니', '취업은 언제 하니' 등의 잔소리를 들어야 하거나, 사실 별로 친하지 않은 친척과 어색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즐겁지만은 않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명절 때마다 며느리들은 시댁에 가지 않기 위해 가짜 깁스를 착용하고, 잔소리표를 만들어 그만큼 금액을 달라는 등의 뉴스가 나올 만큼 사람들이 받는 명절 스트레스는 꽤 크다.



오죽하면 '명절 잔소리 메뉴판'을 만들어, 이런 말을 하기 위해서는 용돈이라도 달라는 사람들의 해학적인 반응이 대두되었을 정도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왜 그렇게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잔소리를 하고, 몸도 마음도 고통스럽게 하는 명절을 보내게끔 하는 것일까?

사실 나는 이 명절 '잔소리'를 뼈저리게 경험해 보지는 않았다. 어릴 때야 놀기만 해도 예쁨받으니 별 상관이 없었고, 본격적으로 어른들이 학업에 대한 질문을 하실 때인 고등학생 때는 코로나 때문에 얼굴을 뵐 기회조차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대학교에 막 입학해 갓 '새내기 라이프'를 즐긴다는 명목 하에 별다른 터치가 없었기에 나에게 명절은 잔소리 메뉴판을 만들 만큼 과중한 부담을 안겨 주지는 않는 존재였다.

그러나 아마도... 대학교 고학년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잔소리 메뉴판'을 적어내려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잔소리를 하는 게 취미인 사람은 거의 없다. 당연히 오랜만에 만난 친척에게 좋은 말을 해 주고 싶은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렇게 잔소리 메뉴판을 만들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본 한 만화가 떠올랐다. 어느 작가께서 쓰신 건지는 까먹었는데...

"왜 어른들은 우리에게 명절에 그런 주제만 물어보실까?"

"어른들도 어색하고 잘 모르니까 그런 주제만 얘기하시는 거지. 사실 별 관심없지 않을까?"

...



"어른들도 어색하고 잘 모르니까 그런 주제만 얘기하시는 거지. 사실 별 관심없지 않을까?"

그 만화를 보면서 '잔소리 메뉴판'을 만드는 젊은 세대 뿐 아니라, '잔소리'를 했던 세대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솔직히 현대 대한민국 사회의 대가족은 더 이상 일가의 느낌이 아니다. 과거에는 할머니/할아버지부터 손자/손녀가 복작복작 살았던 대가족이었지만, 지금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이 더 많아질 만큼 명절 때 한두 번 얼굴 보는 게 전부인 집도 많아졌다.

그런 상황에서 오랜만에 만난 조카를 봤을 때. 아무런 말도 붙이지 않기에는 어색하고, 그렇다고 해서 딱히 아는 것도 없을 것이다. 대화를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질문'이 사용되고, 이 질문의 주제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해당될 취업, 결혼과 같은 광범위한 테마가 쉽지 않을까?

우리는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과 작고 얇은 가지까지 공유하곤 한다. 단순한 취업/학과/결혼을 넘어서서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가수)는 누구인지, 영화는 무엇인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 누구와 연애를 하고 있는지, 어떤 웃긴 썰들이 있었는지 시시콜콜 작은 요소까지 수다떨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이다.

그러나 오랜만에 본 친척의 얼굴을 보자마자 친구 A와 있었던 일이 누구인지 말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 친척은 친구 A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성격인지도 제대로 모르지 않는가! 공유하는 부분이 적은 만큼, 우리는 가지가 아니라 줄기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지에서 다시 줄기로, 가볍고 부담없는 이야기에서 우리 삶을 지탱하고 있는 아주 무겁고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에 거부감이 있을 것이다.

어째보면 슬픈 일이다. 어떻게든 말을 해 보려 줄기라도 소환하는 친척과 가지의 이야기만 하던 조카의 불협화음은 과거 우리 TV 드라마에 나오던 '가족간의 정'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어색하고 잘 모르니까 그런 주제만 얘기하시는 거지. 사실 별 관심없지 않을까?"

그런데 이미 사회는 그런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과거의 가족처럼 모두가 한 집안에 모여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나는 두 번째 문장도 인상깊었다. 사실 별 관심없지 않을까?

우리도 1년에 한두 번 보는 친척들의 모든 게 궁금하지는 않다. 간단히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만 알면 그러려니 한다! 그 친척의 이야기가 아주 드라마틱하지 않은 이상 A는 이렇게 지내고 B는 이렇게 지내는구나 떠올리는 정도다.

사실 어른들은 우리가 느끼는 잔소리의 강도만큼 아주 세심하고 철저하게 관심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명절의 잔소리, 물론 가뜩이나 일상생활도 힘든 젊은 세대들 ('잔소리'를 주로 듣는 세대)은 잔소리 메뉴판을 만들 만큼 오랜만에 보는 친척의 물음표에 유쾌하지는 않을 수 있으나 그냥 힘을 빼보면 어떨까?

심각하지 않게, 그냥 달달한 간식 먹으면서 가볍게 얘기하고, 역으로 질문을 던져 보면 위에서 언급한 만화의 한 장면처럼 오히려 어른들이 더 많은 얘기를 해 주실지도 모른다. 평소의 나와 다른 이야기라고 해서 지나치게 낯설어하거나 거부감을 느낄 필요 없이, 가족의 확인을 위해 힘을 쭉 빼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은 조금 더 가벼운 주제를 꺼내보는 게 어떨까? 미래의 비전과 같은 줄기보다는 가지의 일들, 전공은 어떤지, 아르바이트는 하는지, 힘든 건 없는지...

솔직히 이런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뜩이나 힘이 들어가는 명절, 그냥 모두가 조금 더 힘을 빼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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