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도둑은 못한다"는 거짓말
씨앗과 환경의 대결
속담에 ‘씨도둑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오이덩굴에서 가지 열리는 법은 없다’는 속담도 있다. 이는 모두 안 좋은 의미에서 부전자전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부정한다. 부전자전이 아니라 씨앗과 환경의 대결이다. 자녀의 성장은 씨를 닮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새싹이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기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씨앗을 뿌린 존재가 아니라 씨앗을 키우는 환경이다. 사람 또한 다르지 않다. 세뇌되듯 뿌리내린 잘못된 고정관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만들어왔고 지금도 만들어내고 있다. ‘최선을 다하면 이루어진다.’ 거나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은 대체로 거짓말이다. ‘부모의 은덕은 낳아서 기른 은덕’이라거나 ‘자식들은 평생 부모 앞에 죄짓고 산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최선을 다하면 이루어지고,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면 세상은 행복한 사람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런데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아무리 간절히 꿈꾸어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감사하고 효도해야 한다는 논리는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낳아주고 키워줬다고 그래야 하는가? 그런 말은 부모 입장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지 자녀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부모가 자신들의 결정으로 낳아 자신들의 뜻대로 키우면서, 선택권도 없이 태어난 자녀에게 은덕을 운운하고 감사와 효도를 바라는 것은 몰염치한 짓이다. 자녀가 부모에게 왜 효도를 해야 하는지 깨달아 그것을 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효도가 부모에게 권리는 아니다.
일방의 유익이나 사회질서를 위해 나오고 쓰여지는 말들에. ‘왜?, 어째서?’라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씨도둑은 못한다.’는 말이나 ‘오이덩굴에서 가지 열리는 법은 없다’라는 속담을 사람에게 비유한 것은 작자의 무지함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말은 채소밭에서나 하는 게 옳다.
오이도 잘 키워야 제대로 된 것을 수확할 수 있다. 아무리 씨가 좋아도 자갈밭이나 가시밭에 뿌리면 싹도 못 틔울 수 있다. 또한 아무리 좋은 밭에 심어도 돌보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하물며 오만가지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야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자녀를 낳기는 쉽지만 잘 키우기는 어렵다. ‘씨도둑은 못한다.’ 거나 그와 비슷한 말들에 고개가 끄덕여지거든 ‘자식을 키우는 데 오만 자루의 품이 든다.’는 속담도 기억할 일이다. 나쁜 아버지가 씨를 뿌린 자녀도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자녀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아버지의 씨도 아니고,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지도 못하는 자녀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비록 부모에게서 그런 것들을 받지 못했어도 좋은 환경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날도 언젠가는 온다고.
만약 그때까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우면, 국가기관이나 이웃에 반드시 도움을 요청하라고. 그래도 안되면 동네방네 소문을 내서라도 방법을 찾으라고. 떠도는 말들에 상처 받지 말고, 시덥잖은 사람들 눈치보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삶을 개척하라고.......
부모로 인해, 그리고 환경에 의해 오늘이 아프고 슬픈 이 땅의 모든 자녀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