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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과 잿빛 사이, 로스앤젤레스 베버리 힐스

Beverly Hills Library 베벌리 힐스 도서관

by 도럽맘 Jan 15. 2025

내게는 도서관 버킷 리스트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첫 번째에 적힌 곳은 바로 베벌리 힐스 도서관이다. 새해가 밝은 김에 이 도서관을 방문하기로 했다. 마침 남편도 멀리 운전하는 김에 동행하자며 흔쾌히 제안해,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다.


하늘은 흐렸고 바람이 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랜만의 드라이브와 새로운 도서관 방문에 설렘만 가득했으니까. 십여 년 전, LA 코리아타운에 살았을 당시에는 베벌리 힐스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화려한 그곳에 내 초라한 모습이 초대받지 못할 것 같아 스스로 발길을 멈췄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이와 함께 도서관을 다니다 보니 유명한 부촌에 있는 도서관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도착한 베벌리 힐스 도서관은 커뮤니티 센터와 함께 있는 건물이었다. 주차가 2시간 무료라니, 이런 관광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호의가 반가웠다. 입구에 자리한 *“Beverly Hills”*라는 간판을 보니 사진부터 찍고 싶어졌다. 이런 순간에는 속물 근성이 발동하는 걸 어쩌겠는가.


도서관 내부는 한눈에 봐도 고풍스러웠다. 은은한 조명과 세련된 분위기는 “베벌리 힐스”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품위를 자랑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다양한 자료들, 특히 DVD 컬렉션이었다. 아마 헐리우드와 가까운 위치 때문이겠지 싶었다. 남편과 아이는 어린이 룸으로 향했고, 나는 도서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큰 창가에 줄지어 놓인 테이블과 의자, 벽에 걸린 영화와 책 포스터들이 마치 “우리는 문화의 중심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어린이 룸은 꽤 넓었다. 스토리 룸, 고전 서적 룸, 스터디 룸 등 다양한 공간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엘리는 책상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그림책 한 권을 읽고 있었다. 책 제목을 보니 자기 이름과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Ellie’s Dragon”*이었다. 드래곤을 사랑으로 키우던 엘리가 점차 관심을 잃고 결국 다른 어린이에게 드래곤을 넘긴다는 이야기였다. 엘리는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엄마, 내가 강아지를 키우면 절대 버리지 않을 거예요.” 그래,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는 건 쉽지 않지. 널 응원해.


도서관을 나와 남편은 베벌리 힐스의 쇼핑 거리를 잠시 구경하자고 했다. 우리는 눈으로만 즐기는 “아이 쇼핑”을 하며 잠시 부자의 삶을 엿보았다. 이후 유명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도시를 가로질러 드라이브를 즐긴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바람은 꽤 거세고 시끄러웠지만 고단했던 우리는 깊은 잠에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뉴스에서 로스앤젤레스에 큰 산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산불은 점점 확산되었고, 결국 베벌리 힐스까지 덮쳤다. 수많은 주택과 건물이 잿더미로 변했고 주민들은 대피해야 했다. 우리가 다녀왔던 그 고풍스럽고 화려했던 도서관과 거리들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한거다.


지난 주말에 베벌리 힐스 도서관에 다녀온 것이 행운이었을까.. 그 지역을 다시 재건축에는 최소 5년이 걸릴 거라고 한다. 그때면 우리가 미국에서 계속 살고 있을지 미지수다. 아마도 다시는 그 지역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 돈과 부, 그리고 삶의 가치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하루빨리 산불이 진화되고 캘리포니아에 시원한 장대비가 내려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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