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사회에서 학교 숙제는 부모의 어려움
미국에서는 아이들에게 내주는 과제를 홈워크(Homework)라고 부른다. 아이가 다니는 곳은 크리스천 사립학교인데, 매일 성경 구절 암송, 단어 암기, 수학(Math), 그리고 10분 책 읽기(Reading)가 기본 숙제다.
나는 이런 게 당연히 모든 학교에 있는 줄 알았는데, 오늘에서야 일반 공립학교는 1학년에는 숙제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립학교와는 확실히 교육 지침이 조금 다른가 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금은 아직 아이가 1학년이라 내가 직접 도와줄 수 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가끔 아이가 수학 문제를 들고 와서 물어볼 때가 있는데, 막상 풀고 나면 쉬운 문제처럼 느껴지지만, 문제를 읽고 해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나에겐 낯설다. 한국식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형식의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땐 슬쩍 ChatGPT에 물어본다.
그러다 보니 아이도 이제는 모르는 게 있으면 “그냥 쳇지피티에 물어볼까?”라고 한다. 나도 그렇고, 아이도 점점 AI에 의존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문제는, 이게 편리하긴 해도 뭔가 찜찜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쉽게 답을 얻는 방식은, 스스로 고민하고 찾아가는 ‘과정의 힘’을 빼앗아가는 건 아닐까? 이건 분명 건강한 학습 방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가 좀 더 능동적으로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다.
하지만 이민자인 내가 아이의 숙제를 끝까지 도와주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아직 아이에게 과외나 학원을 붙이기엔 시기상조처럼 느껴지고,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예전에 한 번, Orange Library에서 운영하는 Homework Help Center에 참여해 본 적이 있다. 도서관 한쪽 공간에 마련된 이 센터는 학생들이 지정된 시간에 방문해 사인업을 하면, 그 자리에 계신 선생님들이 숙제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엘리도 한 번 참여해 본 적이 있는데, 아이가 문제를 읽고 선생님이 함께 고민해주는 그 시간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다만 프로그램 시간이 오후 4시까지라 하원 시간과 맞지 않았고, 거리가 멀다는 점도 부담이었다.
그래서 보통 우리는 하원 후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숙제를 꺼내서 하게 한다.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아이는 내게 묻는다.
“엄마, 이 문제 모르겠어.”
“어디 보자… 음, 엄마도 잘 이해가 안 되네.”
“그냥 내가 사서 선생님께 물어볼게.”
“어… 그래.”
내가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니 아이도 답답한 눈치다. 그러다 숙제를 들고 조심스레 사서 선생님이 계신 책상 앞으로 가서 도움을 요청한다.
사서 선생님도 처음엔 조금 당황하셨지만, 아이가 자주 찾아가 질문하다 보니 이젠 익숙해지신 듯 자주 도와주신다. 그 모습이 감사하고도, 죄송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난주 부에나팍 도서관에서 우연히 한 장의 전단지를 발견했다. 숙제 도와주기 프로그램 안내문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겨왔지만,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몰라 며칠을 망설이기만 했다.
며칠 전, 아이가 또 모르는 문제를 들고 사서 선생님께 향하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 신세만 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예 사서 선생님께 직접 이 숙제 도와주기 프로그램 이용법을 여쭤보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책상 위 컴퓨터를 켜고 도서관 웹사이트에 접속하시더니,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도서관 카드만 있으면 바로 로그인할 수 있고, ‘Brainfuse HelpNow’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학년과 숙제 과목을 선택한 후 질문을 입력하면 실시간으로 튜터 선생님이 답변을 준다고 했다.
사진이나 파일도 올릴 수 있어서 더 정확한 질문이 가능했다.
그날 저녁, 아이와 다시 도서관에 가서 직접 시도해 보기로 했다. 웹사이트에 접속하고 로그인을 한 뒤, 질문을 입력하니 정말 튜터 선생님으로부터 실시간 답변이 날아왔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1학년인 엘리가 컴퓨터 타자를 잘 못 치고, 모르는 문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결국 몇 마디 나누다 포기했고, 아이는 다시 숙제를 들고 사서 선생님께 향했다.
그리고 또 도움을 받았다. 나는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에 다시 한번 사서 선생님께 여쭈어보았다.
“아직은 엘리처럼 어린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쓰기엔 좀 어려운 것 같아요.”
“맞아요. 조금 어려워 보이네요.”
“온라인보다는 얼굴을 보고 질문하면 훨씬 나은데… 혹시 도서관에서 직접 숙제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다시 운영할 계획은 없을까요?”
“사실 고등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 숙제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려고 준비 중이에요.”
“정말요? 아, 이건 정말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에요. 특히 저희처럼 이민자 부모들은 도움받을 곳이 많지 않거든요. 튜터 비용도 부담되고…”
“네, 저희도 최대한 빨리 시작해보려고 해요.”
도서관을 자주 찾으면서 느끼는 건, 도서관은 단순히 책만 진열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의 학업을 도우려는 고민과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아이가 도서관을 통해 단순히 책만 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어른들과의 관계를 맺고, 그런 어른들이 자신 같은 어린 존재를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걸 느끼길 바란다.
아이 숙제의 정답을 알려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그 역할을 조용히, 묵묵히 해주고 있는 이들이 바로 도서관 선생님들이다.
오늘도 숙제를 펼치는 아이 곁에서, 나는 다시 한번 도서관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