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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학군지의 멋진 바짓바람

아빠의 열정으로 뜨거운 요바린다 도서관

by 도럽맘

토요일 아침, 나는 작은 문화 충격을 겪었다.

책 한 권 때문이었다.


며칠 전 반납일을 넘긴 책 한 권이 있었고, 우리는 그 책을 반납하러 토요일 오전에 요바린다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사소한 이유였지만, 그렇게 또 도서관에 갈 수 있는 핑계가 생겼다는 사실에 나는 은근히 기뻤다.


요바린다는 내가 사는 부에나팍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도시다. 멀지만 갈만한 가치가 있는 도시라 평소에도 자주 가는 곳이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차에서 내리자 익숙한 풍경이 반겼다. 도서관 앞 잔디밭에서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고,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는 아침 햇살이 도서관 내부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곳은 늘 그렇듯 활기찼다.


요바린다.

이 도시는 미국의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고향이다. 오랫동안 보수적인 백인 크리스천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동네이기도 하다.


곳곳에 오래된 교회와 전통 있는 학교들이 자리잡고 있고, 요바린다 도서관 역시 설립된 지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가는 유서 깊은 공간이다. 코로나 이후 새롭게 재건축되며, 지금은 요바린다의 상징이자 자랑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도서관은 그야말로 ‘지역 문화의 중심’이라 할 만하다.


최근에는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아시아계와 인도계 주민들이 이 지역으로 빠르게 유입되자 자연스레 학군도 좋아지고, 도서관의 이용률 역시 눈에 띄게 높아졌다. 특히나 주말 아침, 이 도서관은 말 그대로 북새통이다.


그 풍경은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몰려드는 사람들.

아이 손을 잡고 들어서는 부모들.

빈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북적이는 열기.


도서관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부모들의 이야기 소리로 꽤나 시끌벅적했지만, 이상하게 그 소음이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든 소리들이 이 공간을 더욱 살아 숨 쉬게 하는 듯했다.


한국 도서관에서라면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아이들은 조용히 해야 한다’, ‘도서관에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지배하는 한국식 도서관 문화에서는, 아이가 책을 고르며 한마디 말만 해도 주변 눈치를 살펴야 한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그저 어린이 공간을 ‘예쁘게’ 꾸민 게 아니라, 아이들이 ‘진심으로 행복하게’ 머물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었다.


아이도, 부모도, 사서도 누구 하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모두가 함께, 편하게, 도서관을 ‘사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가장 놀라워한 건,

아이와 함께 도서관을 찾은 수많은 아빠들이었다.


보통 토요일 아침이라면, 대부분의 아빠들은 “좀 더 자자”는 말을 입에 달고 있지 않던가. 한 주간의 피로를 푼다며, 커피 한 잔과 함께 소파에 늘어져 있지 않던가.


그런데 이곳, 요바린다 도서관에는 도서관 문이 열리자마자,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서는 아빠들이 있었다.


책장 앞에 서서 진지하게 책을 고르는 아빠,

아이 무릎에 앉혀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며 읽어주는 아빠,


그 장면은 조금 과장하자면, ‘감동’이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동시에 너무 아름다워서, 도서관의 구석에서 조용히 감탄하고 말았다.


서가 곳곳에서 아빠와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그림이었다.


경쟁도, 의무감도 아닌, ‘함께 자라는 시간’ 이 그곳에 있었다.


책을 읽어주는 투박한 손.

아이를 무릎에 앉힌 푸근한 몸짓.

모두가 진지했고, 모두가 따뜻했다.


나도 토요일마다 도서관에 가고, 스토리타임에 참여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고, 아이와 함께 앉아 읽는다.

하지만 이곳에서 마주한 풍경은 조금 달랐다.


이건 단순히 ‘책 좋아하는 가족’의 이야기 그 이상이었다.


이곳에서는 도서관이 삶이었다.


주말 아침이면 눈 뜨자마자 도서관으로 향하는 삶.

부모와 함께 책을 고르고, 도서관을 중심으로 하루가 시작되는 삶.


이런 환경에서 자란다면

독서는 아이에게 습관이 아닌 생활이 되지 않을까?


책은 곁에 두어야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결국 아이의 일부가 된다.


오늘 나는 그 과정을 눈으로 보았다.

이건 단지 ‘좋은 학군지’의 풍경이 아니라, 함께 자라는 공동체’의 모습이라는 것을 보고 배우는 시간이였다.


그리고 오늘 나는 마음속에 작은 다짐을 하나 더했다.


나도 아이와 함께, 이 멋진 치마바람과 바짓바람의 세계 안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걸어가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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