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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

한숨을 쉬는 아이

by 도럽맘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지나 어느새 4월의 끝자락에 섰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4월, 엘리는 두 개의 유치가 더 빠졌다. 하지만 이번 달, 아이가 겪은 변화는 단순히 신체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아마 3월 초부터였을까.

어느 날부터 아이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 매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엄마, 천국은 좋아?”

“엄마, 하나님을 모르고 죽는 아이들은 천국에 갈 수 있어?”

“엄마, 천국에 가면 우리는 몇 살 모습으로 살게 돼?”

“아빠는 21살, 엄마는 20살, 나는 19살로 살고 싶어.”

“엄마, 내가 죽으면 어떻게 돼?”

“엄마, 혹시 내가 죽으면 동생 가질 거야?”


어디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을까.

아이는 매일, 참신하고도 때론 아찔한 질문들을 내게 쏟아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아이는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엄마, 숨 쉬는 게 힘들어…”

그리고 고난주간의 성금요일, 아이에게 과호흡이 찾아왔다.

숨을 고르지 못하고, 점점 거칠어지는 아이의 숨소리.

흔들리는 아이의 어깨를 보며,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엄마, 나 죽는 게 무서워. 죽고 싶지 않아.”


그날 우리는 교회 리허설에 참석했다.

칸타타 연습 중, 스크린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장면이 잠시 비춰졌다.

그 순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이의 마음을 집어삼킨 듯했다.


처음엔 그저 일시적인 궁금증이라 여겼다.

하지만 품에 안긴 채 불안과 눈물을 쏟아내는 아이를 보며, 나는 깨달았다.

이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란 걸.


“호흡을 천천히 해봐.”

“한숨을 쉬지 말아봐.”


나의 이런 말들은 오히려 아이를 더 힘들게 했다.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숨을 고르지 못하는 아이를 꼭 안아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하나님, 우리 엘리가 죽음에 대한 불안감으로 힘들어하고 있어요.

엘리의 마음을 진정시켜주시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기도를 마치자, 자연스럽게 입에서 찬양이 흘러나왔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우편에 그늘 되시니

낮의 해와 밤의 달도 너를 해치 못하리…”


얼마나 오래 아이를 품고 이 찬양을 불렀을까.

조금씩 아이의 숨소리가 가벼워지더니,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나는 잠들 수 없었다.

잠든 아이를 베개에 조심스레 눕히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7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검색했다.


발달 심리학 글에 따르면, 7살은 처음으로 죽음을 ‘되돌릴 수 없는 영원한 이별’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한다.

5-6살까지는 만화처럼 죽음 이후에도 다시 깨어날 수 있다고 믿지만,

7살이 되면 죽음은 ‘모든 생명에게 일어나는 일’이며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고 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아직 감정을 조절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더더욱 불안하고, 무섭다.

그리고 그 무거운 감정을, 가장 안전한 존재인 엄마에게 들고 온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흔들렸다.

아이의 불안을 받아주면서, 나 역시 죽음이라는 두 글자 앞에 가슴이 미어졌다.

혹시나 아이와 언젠가 이별해야 한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고, 끝내 눈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나는 엄마다.

두려움에 흔들리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작은 별 하나를 쥐여주기로 했다.



다음날도 아이는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엄마, 그래도 나 아직도 죽는 게 무서워.”


나는 지치지 않으려 애쓰며 대답했다.


“응, 괜찮아.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지켜주실 거야.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거래. 걱정 마.”


그러면 아이는 잠시 안심했다가, 다시 불안해하며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도 어릴 적 같은 두려움을 느꼈던 기억을 꺼내 이야기해주었다.


한동안, 우리는 도서관 가는 걸 멈췄다.

책 대신, 바람을 맞으며 숨을 고를 수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철봉에 매달려 자신의 단단함을 느끼고,

그네를 타며 스쳐가는 바람 속에서 살아있음을 만끽하길 바라며.



4월은 우리 모두에게 성장통이 깊었던 달이었다.

빠진 두 개의 유치보다,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감정의 파도를 이겨내려 한 아이의 씨름이 더 컸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진심 어린 기도와 응원을 보내는 엄마로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책을 내려놓았다.

대신 서로의 얼굴을 더 자주 바라보고,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껴안아주었다.


어느 엄마라도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아이가 두려움보다 행복을 더 많이 느끼길.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오래오래 웃어주길.


다행히, 아이는 강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 아이는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깊었던 한숨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나는 믿는다.

두려움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아이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걸어나오고 있다.


그저 바랄 뿐이다.

작은 불안마저 부모의 사랑으로 감싸 안으면,

결국 행복이라는 이름의 꽃이 아이의 마음에 피어날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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