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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 만들기 체험

by 도럽맘

며칠이 흐르자 아이의 무거웠던 한숨 소리가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가끔 ‘죽음’에 대해 묻고는 했지만, 그럴 때면 조용히 내 옆에 바짝 붙어 안정을 찾았다. 그 모습마저도 예전보다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다행이었다.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했고, 자신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위로를 받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도서관으로 옮겼다. 한 달 전부터 도서관 캘린더에서 눈에 띄던 새로운 프로그램이 있었다. ‘Since Fri’라는 이름의 과학 프로그램이었는데, 2학년부터 참여가 가능하다고 되어 있었다. 아직 1학년인 엘리는 규정상 참석할 수 없는 나이였지만, 그걸로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그동안의 도서관 나들이로 여러 사서들과 친분이 생긴 터라, 나는 조심스럽게 한 사서에게 다가가 엘리도 참여할 수 있는지 여쭈어보았다. 그러자 “스스로 핸들링이 가능하다면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얼마나 반가운지 연신 “땡큐!”를 외쳤다.


다음 날, 하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갔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의 4월 날씨는 어찌나 변덕스러운지,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고 바람까지 거세서 많은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는 중이었다. 엘리도 전날 콧물 감기로 하루 결석한 터였다. 컨디션이 좀 회복되어 학교에 보내긴 했지만, 혹시 하원 후 힘들어하면 집으로 바로 데려가 쉬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차에 올라탄 엘리는 묻기도 전에 “도서관 갈 거야!”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만, 배가 고프단다. 시계를 보니 30분 정도 여유가 있어, 평소 자주 가는 단골 요거트 가게에 들렀다. 혹시 늦을까 싶어 가는 길에 미리 사장님께 전화로 주문을 넣어 두었더니, 도착하자마자 요거트와 치즈빵을 받아 바로 먹을 수 있었다. 부지런히 간식을 챙겨 먹고 서둘러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처럼 프로그램에 관심 많은 부모들이 많았는지 어린이룸은 북적였다.


도서관 어린이룸 한쪽에는 기다란 하얀 테이블이 세 줄로 놓여 있었고, 일찍 도착한 아이들로 이미 자리는 꽉 차 있었다. 우리처럼 늦게 도착한 가족들은 사이사이 의자를 옮겨 끼어 앉거나, 서서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동네 도서관의 이용자가 부쩍 늘었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새로 생긴 프로그램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이곳 사서들은 남다른 열정과 따뜻함을 가지고 있어서, 도서관을 더 친근하게 느끼는 발걸음이 늘어난 게 아닐까 싶다. 도서관 팬으로서 너무나 반가운 변화다.


이날 프로그램을 진행한 분은 평소 수염을 멋지게 기르시는 사서님이었다. 아마 앞으로 이 과학 프로그램은 이분이 계속 맡게 될 것 같은데, 비주얼부터 과학 선생님 그 자체였다. 하얀 과학자 가운까지 입고 계셔서 더 그런 느낌이었다. 먼저 학생들에게 화석에 대한 내용이 적힌 유인물을 나눠주시고 함께 읽는 시간을 가졌다. 아, 이런 자료를 이해하려면 왜 2학년 이상부터라고 했는지 알겠다. 나는 41살인데도 어려운데… 나도 참석해도 될까?


이어지는 순서는 다큐멘터리 시청. 다만 같은 공간에 비참여 어린이들도 함께 있어서 다소 산만하긴 했지만, 활기찬 분위기 자체는 보기 좋았다.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 나서는 본격적인 실험 시간. 아이들은 종이 접시와 작은 공룡 인형을 하나씩 받아 앞 테이블로 이동했고, 사서님은 화석 만들기에 필요한 시멘트 같은 재료를 부어주셨다. 삼십 분만 기다리면 굳어진 시멘트를 벗겨 화석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한 시간 넘게 진행된 프로그램이 예약도 필요 없고, 무료라니… 놀라웠다. 게다가 이런 유사 프로그램이 한 달 일정표에 빼곡하다.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장소를 넘어, 지역 사회의 배움과 만남의 장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생생한 현장이었다.


아직 엘리의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지만,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음에 감사했다. 특히 평소에 가장 좋아하고 익숙한 공간인 도서관으로 다시 돌아온 덕인지, 아이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한숨을 쉬어야만 할 것 같은’ 그 강박에서도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듯 보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고 회복도 빨랐다.


이렇게 오늘처럼 또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도전하고, 배우다 보면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밝은 햇살이 가득한 새날을 맞이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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