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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만난 미국 문화

계절에 따라 변하는 도서관 프로그램

by 도럽맘

미국의 도서관을 다니다 보면, 이곳이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공간이 아님을 금세 알게 된다. 도서관은 지역 사회가 모이고, 세대를 넘어 문화를 나누며, 아이들이 세상을 배우는 살아있는 교실이다. 나 역시 이민자 엄마로서 도서관 프로그램을 매달 챙겨보는 것이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미국 문화와 명절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도서관에서 열리는 계절과 역사, 공동체 정신이 녹아든 프로그램들이 무척 반갑다


1월,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달. 도서관에서는 새해 다짐을 적는 캘린더를 만들고,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이야기를 읽으며 ‘용기’와 ‘평등’이라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도서관 곳곳에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자서전과 그림책이 정성스럽게 전시된다.


2월이 되면 도서관은 사랑과 우정으로 가득 찬다. 아이들은 밸런타인 카드를 만들고 쿠키를 꾸미며 친구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정서적으로 한 뼘 더 자란다. 동시에 흑인역사월간을 맞아 흑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며 다양성의 가치를 배운다.


3월엔 초록색 보물 찾기가 인기다. 세인트 패트릭 데이를 맞아 요정을 잡는 트랩을 만들고, 신화와 전설을 읽는다. 또한 여성역사월간이기도 해서, 세상을 바꾼 여성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여성 작가가 쓴 책을 읽거나 특정 직업을 가진 여성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도 열린다.


4월은 지구를 사랑하는 달이다. 지구의 날을 맞아 씨앗을 심고, 재활용 공예를 하며, “우리가 아끼는 도서관”에 대한 그림도 그려본다. 그리고 때때로 부활절이 4월에 오면, 도서관 곳곳에 숨겨진 이스터에그를 찾는 재미도 있다.


5월에는 ‘엄마’를 위한 날, Mother’s Day가 기다린다.

아이들이 손으로 정성껏 만든 카드와 작고 예쁜 공예품은 어떤 값비싼 선물보다도 따뜻한 감동을 준다. 특히 5월은 흥미로운 행사들이 많은 달이다.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영화 스타워즈의 유명한 대사 “May the Force Be With You”에 착안해, 매년 5월 4일에는 도서관에서 스타워즈 테마의 특별 행사가 열린다.


또한, 아시아계 미국인의 유산의 달(A.A.P.I.) 을 기념하여 아시아 문화를 소개하는 이야기 시간과 공예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도서관의 한쪽 벽에는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국기와 추모 메시지가 함께 전시되어, 감사와 기억의 의미도 함께 나누는 달이다.


6월이 되면 기다리던 여름 독서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신나는 여름 방학의 시작을 도서관에서 여는 셈이다. 아버지날을 맞아 아빠에게 주는 도구함을 만들기도 하고, 아이스크림 스토리타임이 있는 날은 책 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기억에 남는다.


7월은 붉은, 흰색, 파란 깃발의 계절이다. 독립기념일을 기념하며 미국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작고 귀여운 퍼레이드 모자를 만들어 쓰기도 한다. 도서관 잔디밭에서 열리는 가족 피크닉은 여름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8월은 새 학기 준비의 달이다. 학용품 빙고 게임을 하며 자연스럽게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여름 독서 시상식에서는 아이들이 그동안 읽은 책을 자랑스럽게 꺼내 보인다. 성취를 함께 나누는 자리는 아이에게 큰 자긍심을 안겨준다.


9월에는 도서관에서 스페인어와 영어가 함께 들리는 스토리타임이 열린다. 히스패닉 문화의 달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언어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커리어 데이에서는 다양한 직업을 소개받으며 “나는 커서 뭐가 될까?”라는 질문을 품게 된다.


10월은 가을 축제와 할로윈의 계절. 코스튬 퍼레이드, 호박 꾸미기, 살짝 무서운 이야기 시간까지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달이기도 하다. 도서관 전체가 들뜨고, 아이들의 상상력이 가장 활발하게 펼쳐지는 시간이다.


11월에는 감사의 마음을 나뭇잎에 적어 붙이는 ‘땡스기빙 트리’가 도서관에 걸린다. 미국 원주민의 문화와 이야기들도 함께 나누며 역사와 감사를 동시에 배운다. ‘감사’라는 가치가 아이들의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12월은 다양한 명절이 어우러지는 달이다. 크리스마스, 하누카, 콴자 등 각 문화권의 겨울 명절 이야기를 읽고, 진저브레드 집을 만들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도서관 속에서 다양성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힘을 배운다.


이렇게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리는 장소를 넘어, 미국이라는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각과 가치를 배울 수 있는 삶의 학교가 되었다. 매달 바뀌는 도서관의 프로그램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아이도 미국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아이의 눈빛은 책 너머의 세상을 향해 점점 더 넓어졌고, 나 역시 도서관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조금 더 단단한 엄마로 자라고 있다. 미국 문화를 알아간다는 건 결국 이 땅에서 우리의 뿌리를 내리는 일이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시작된 이 여정 속에서, 우리는 매달 조금씩 자라고 있다. 책과 사람, 문화와 이야기가 만나는 이 공간에서, 나도 아이도 함께 배우고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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