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간의 도서관 기록 일지 / 200회 도서관 누적 방문
토요일 아침, 미국에도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밀린 늦잠을 자고 싶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는 사치인 바람일 뿐, 8시가 되자 늘 그랬듯이 나와 엘리는 침대 밖으로 나와 고양이 세수를 마치고 집을 나선다. 도서관애 가기 전 들리는 맥도날드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핫케이크와 맥모닝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늦지 않게 다시 부에나팍 도서관으로 출발을 했다. 아직 10시도 되기 전이었는데 주차장은 이미 만석이고 도서관 앞은 가족 단위로 온 이용객들로 북적이는 모습이디. 사실 오늘은 평범한 토요일 도서관 풍경이 아니다. 바로 썸머 리딩 챌린지의 시작을 알리는 축제날인데 도서관 앞 잔디밭에는 작은 동물 친구들이 모여 있고, 버블쇼, 매직쇼, 어린이 카레이싱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한창이었다. 아직 구름이 개지 않아 조금은 쌀쌀한 날씨이지만 아이들의 얼굴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우리도 신나게 참여하려는 찰나, 마침 매직쇼가 시작됐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매지션, Billy Bonkers의 공연이다. 부에나팍 도서관에서 벌써 네 번째 보는 공연인데도 늘 새롭고 유쾌하다. 영국에서 온 Billy는 특유의 영국식 억양까지 매력적이고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매직쇼에 어른들도 아이들도 배꼽 잡고 웃게 된다.
놀랍게도 Billy가 전에 내가 릴스에 올린 영상을 기억한 듯했다. 무대가 시작하기 전에 가장 앞자리에 앉은 엘리를 기억하고 내게 다가와 멋진 영상을 올려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다. 매직쇼가 시작되자 아이들은 서로 도우미를 하겠다며 손을 번쩍 드는데 오늘은 그 고마움의 보답으로 엘리에게 무대에서 도와줄 기회를 주었다. 나는 흐뭇한 미소로 멋진 두 파트너를 열렬히 응원하며 영상을 다시 찍어본다. 오늘도 Billy의 매직쇼를 릴스에 올릴 예정이다.
나는 아이가 매직쇼뿐만 아니라 도서관에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를 경험하고 있는 동안 도서관 앞에 마련된 부수 앞으로 다가갔다. 바로 이번 이벤트를 주최하게 된 진짜 목적인 ‘썸머 리딩 챌린지’ 프로그램 등록 부스였다. 나도 부스 앞으로 다가가 QR코드를 찍고 챌린지 프로그램에 등록을 해본다. 운영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큐알 코트를 찍은 후 아이 이름과 간단한 정보를 입력하면 바로 시작이 가능하다. 그렇게 아이가 책을 읽고 나면 앱에 접속해 독서 기록을 체크한다. 정해진 횟수, 7, 14, 21번의 독서를 완료하면 도서관에서 준비한 작은 선물을 받을 수가 있다. 아이는 벌써 의욕이 불타오른다.
⸻
오늘은 도서관 잔디밭에서 매직쇼가 열린 예정이다. 썸머스쿨에 다니고 있는 엘리를 픽업하고 바로 도서관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엘리와 함께 나눠먹을 도시락을 싸왔다.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막 먹기 시작하였는데 빨간 자동차 한 대가 게스트 구역에 멈췄다. 오늘 매직쇼 공연을 하러 온 매직션으로 보이는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검정 조끼에 검정 바지, 보라색 긴 양말까지 첫인상부터 남달랐다. 그가 내리자 마치 약속을 한 든 주변에 주차된 차에서 하나둘 사람들이 블랭킷과 캠핑 의자를 챙겨 내린다 그리고 분주하게 잔디밭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맘 편하게 벤치에서 밥을 먹던 우리도 서둘러 도시락을 들고 잔디밭 앞으로 자리를 옮겨 맨 앞 가운데 자리에 블랭킷을 폈다. 그러자 금세 주변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한참 매직쇼를 준비하는 걸 지켜보고 있는데 도 엘리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자동차를 보더니 친구 이름을 외친다. 방학하고 처음 만나는 반 친구 모습에 아이는 대흥분 상태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블랭킷은 아이들 차지가 되어버린다.
잔디밭이 사람들로 가득 차자 곧 공연이 시작되었다. 오늘의 매직션 David는 말솜씨가 대단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지난주 토요일 왔던 매직션 Billy는 에너지가 넘치던 마술의 강자라면, David는 미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센스 넘치는 입담의 고수이다. 두 매직션의 매직쇼 스타일은 다르지만 둘 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함박웃음을 짓게 해 준 최고의 매직션들이다. 공연이 끝나자 엘리는 도서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래도 도서관에 왔는데 잔비밭에만 머물다 갈 수는 없지 아니한가. 엘리는 서가를 다니며 책을 고르기 시작한다. 그녀에게는 책을 열심히 그것도 많이 읽어야 하는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빨리 썸머 리딩 챌린지를 완수해야 원하는 선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썸머 리딩 챌린지 시작 후 확실히 책 읽는 양이 늘었다. 오늘까지 벌써 7권을 읽었다. 내일 다시 도서관에 준비한 쿠폰 선물과 스티커를 받으러 도서관에 또 들려야 한다.
문 닫기 1분 전, 우리는 도서관을 나섰고, 엘리가 조용히 말한다.
“엄마, 나 너무 배고파.”
그래, 나도 그렇다.
즐거운 하루는 왜 이렇게 배도 많이 고플까.
⸻
오늘도 어제처럼 도서관에서 함께 먹을 저녁 도시락을 싸서 나가려 했지만 브런치 스토리 연재날이라 글을 쓰고 올리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아이를 픽업하고 서둘러 근처 짜장면 집에 갔더니 휴무, 길 건너 만두집에 갔더니 거기도 휴무이다. 화요일은 문을 닫는 음식점이 많구나.. 급한 대로 도서관을 가는 길목에 있는 쇼핑몰에 들려 돈가스와 해물볶음 시켜 먹고는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매 월 둘째 주, 화요일 6시 345분이면 BuenaPark Library에서는 ‘Read to a Bark the Dog’이라는 강아지에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한다. 우리의 최애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2년 전 11월 처음 이 프로그램에 참석 한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내가 오늘 급하게 움직이는 이유는 평소에는 참석자들이 몇 없어서 엘리가 두 강아지에게 여유롭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충분하지만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참석자들이 많아서 일찍 가서 사인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 도서관에 차를 파킹하고 나오니 오늘 프로그램의 주인공 강아지 친구 그레이시와 롸켓도 도착이다. 엘리는 반갑게 두 동물 친구와 인사를 나누며 도서관 안으로 들어간다. 역시나 오늘은 강아지를 만나러 온 아이들로 도서관이 부쩍이다. 모두 얼굴은 설렘에 가득하고 어떠한 책을 읽어줄지 열심히 책을 고르는 모습이 귀엽다.
엘리도 사인업을 한다. 오늘은 아깝게도 한 친구에게만 책을 읽어줄 수 있다고 해서 한참을 고민 끝에 ‘그레이시’ 이름 아래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냈다.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엘리는 Father’s Day를 위한 북마크를 만들고 색종이 공작도 하며 얌전히 기다린다. 그리고는 7권을 책을 완수했기에 그에 맞는 챌린지 보상으로 키즈 메뉴 쿠폰을 받는다 식당 이름은 The Old Spaghetti Factory. 처음 듣는 곳이지만 아이와 토요일에 가보기로 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엘리의 차례가 되자 발렌티어 언니가 엘리의 이름을 부른다. 엘리는 책을 한 권 들고 와서는 그레이시 앞에 앉아 책을 읽어준다. 오늘도 그레이시는 열심히 잔다.. 아니 들어준다. ㅎㅎ 도서관 문 닫기에 10분도 남지 않았는데 엘리가 탄력이 붙어 14권을 더 빌렸다. “엄마, 21권 읽으면 또 상품이 있대!” 그 말에 번개처럼 책장을 넘기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워워 천천히 가자 엘리야. 책을 그렇게 급하게 읽으면 채해. ^^’
⸻
아침부터 엘리는 책 읽느라 눈코 뜰 새 없다. 지난 토요일에 리딩 챌린지를 신청한 후 벌써 14권을 읽었다. 오후에 썸머스쿨에서 하원하자마자 선물을 받으러 도서관에 가자며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오늘부터 교회 VBS에 시작되기에 도서관에 들릴 시간이 부족하지만 아이의 성화에 하원하자마자 부랴부랴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도착하자마자 챌린지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서에게 달려가 자신의 Last Named을 말하자 사서는 아이의 독서 기록을 확인해 준다. 지금까지 14권을 완료한 엘리는 도서관에 주는 작은 스누피 지우개, 종이접기 세트, 그리고 키즈 메뉴 쿠폰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14권 선물 리스트 중 원하는 상품 하나를 골라야 했는데, 아이는 한참 고민하다 ‘Deer Pong’이라는 보드게임을 골랐다.
“이건 아빠랑 같이 할 거야!”라는 말에 웃음이 났다.
이제 남은 목표는 21권. 엘리의 눈은 이미 도서관 오피스에 진열된 큰 인형을 향해 있었다. 그 인형을 받겠다며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는데…
속으로 중얼거릴 수밖에.
“아가야… 이제는 침대에 인형 놓을 자리가 없단다…”
그래도 괜찮다.
이렇게 신나게 책을 읽는 여름이라면, 인형 몇 개쯤 더 들어와도 좋은 여름이지.
1주일 만에 ‘썸머 리딩 챌린지’를 완주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집에서도, 틈만 나면 엘리는 책을 읽었다. 그 인형이 그렇게 갖고 싶었던 걸까. 아이의 마음은 점점 더 바빠졌다.
책 한 권을 끝낼 때마다 엘리는 내게 숫자를 말한다.
“이제 3권만 더 읽으면 돼.”
“이제 1권 남았어.”
그리고 드디어, 21권을 다 읽었다.
엘리는 VBS에 가기 전, 꼭 도서관에 들러달라고 조른다. 오늘 안 가면 며칠 동안 계속 졸라댈 기세다. 토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우리는 부에나팍 도서관으로 향했다.
물론, 토요일 오전 루틴인 맥도날드 핫케이크도 빠질 수 없다. 도서관에 가지 챌린지 데스크 앞에는 이미 21권을 다 읽은 아이가 선물을 받고 있었다. 바로 엘리가 그토록 원하던, 그 커다란 인형이다.
엘리의 눈빛이 반짝인다.
부러움과 ‘나도 얼른 받아야지’ 하는 다급함이 교차된 눈빛이다.
그런데 마침 도서관 안에서는 스토리타임이 막 시작되었다.
“그 인형은 이따가도 받을 수 있으니까,
우선 스토리타임에 참석하자.”
나는 아이의 등을 가볍게 떠밀며 말했다.
하지만 아이가 집중이 될까. 눈은 자꾸 데스크를 향한다. 결국 첫 번째 책 낭독이 끝나고, 아이들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자
엘리는 나에게 애원하듯 말한다.
“제발, 지금 가서 받아오면 안 돼?”
그래, 지금 이 아이의 마음은 온통 그 인형에게 가 있는데 이 상태로 스토리타임을 듣는다는 건 고역이겠지.
“그래, 얼른 다녀와.”
엘리는 세상 신난 표정으로 뛰어나갔다. 5분쯤 지났을까.
아이 몸만 한 인형을 꼭 껴안고 어린이룸으로 들어오는 엘리.
입꼬리가 찢어질 듯한 그 얼굴을 보니, 나도 괜히 웃음이 난다.
스토리타임이 끝난 뒤, 엘리는 사서 선생님에게 인형을 자랑한다. 그런 모습이 참 아이답고, 귀엽다.
차에 올라타자, 이번엔 인형 이름을 두고 갑론을박.
“21권을 읽고 받은 거니까 ‘투에니원’ 어때?”
“아니야, 얘는 부엉이처럼 생겼으니까 ‘부엉이’가 좋아.”
그래, 뭐 엄마 의견이 그렇게 중요하랴.
“좋아, 네가 좋아하는 이름으로 부르자.”
그날 밤, ‘부엉이’는 당당히 엘리 침대의 주인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여름 리딩 챌린지는 커다란 인형 한 마리와 함께 따뜻하게 마무리되었다.
오늘로써 엘리와 도서관을 다닌 지 200회가 되었다. 2023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초겨울 어느 날, 우연히 지나가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도서관 문을 열었다.
그날은 특별한 날도, 거창한 목표도 없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와 그걸 응원하고 싶은 엄마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도서관 나들이가 오늘로 200번째라니.. 이 숫자에는 사소한 기쁨과 평범한 하루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아이에게는 책을 읽는 일이, 나에게는 기록하는 일이 이제는 하루의 중심이 되었다. 도서관은 우리 가족의 거실이 되어주었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곳이 아니었다. 우리는 학교를 마치면 또 주말이면 늘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시락을 싸고 가기도 하고, 때로는 맥도날드나 판다 익스프레스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도서관 앞 잔디밭에 앉아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버블쇼, 매직쇼, 동물 친구들과의 만남 같은 이벤트가 열렸고, 우리는 그 안에서 계절을 만났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아이의 웃음, 그리고 나만의 작은 시간. 그게 바로 우리가 도서관에서 찾은 ‘일상 속 기적’이었다. 아이는 글자를 읽기 시작하였고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도서관에 처음 갔을 때, 아이는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지어내곤 했다. 그러던 아이가 이제는 정확한 발음으로 한 줄 한 줄 책을 읽는다. 책의 세계를 이해하고, 이야기를 따라가는 그 모습은 마치 책 속 주인공처럼 성장하고 있는 모이다. 그 옆에서 나는 조용히 글을 쓴다. 릴스로, 브런치 에세이로, 노션 일지로… 책을 고르고 읽고 다시 빌리러 가는 반복되는 날들이 결국 내 글의 소재가 되었다. 그렇게 책장을 넘기는 아이 옆에서 나는 우리의 서사를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도 자라고 있다. 엄마가 된 이후의 삶은 늘 반복되었다. 먹이고, 씻기고, 데리고 나가고, 재우고. 나를 위한 시간은 늘 가장 나중이다. 하지만 도서관에선 달랐다. 아이 옆에서 나는 ‘엄마’가 아닌 그저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앞으로 구체적인 목표는 없다. 다만 오늘처럼, 내일도 우리는 또 도서관으로 갈 것이다. 책을 읽고, 웃고, 기록하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와 함께 이 소중한 하루를 또 하나 쌓기 위해서.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우리는 또다시 도서관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