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 속 생생한 일상과 사랑의 서사를 담다

닥터 지바고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by 송민경

닥터 지바고는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1957년에 발표한 소설로, 주로 20세기 초 러시아의 역사적 배경을 다루고 있습니다. 1900년대 초반 제정 러시아가 무너져가는 시기가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이 시기는 사회적 정치적 불안정성이 커지고 혁명적인 움직임이 활발해지는데요.

그러던 중 1917년 유명했던 러시아 혁명이 터지게 됩니다. 이 혁명은 제정 러시아의 종말을 가져오고 볼셰비키와 멘셰비키간의 갈등 그리고 내전으로 이어지게 되는데요. 이 러시아 혁명을 시작으로한 내전은 소설의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이러한 러시아 내전(1917~1922)동안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고통을 받고, 일상의 삶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이야기하며, 닥터 지바고는 개개인들의 삶이 역사적 사건과 어떻게 얽혀 가는지를 그 거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데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지금부터 시작해 볼게요!!


dagteo-jibago.jpeg 닥터 지바고 - 영화


이 작품의 주요 인물은 시를 쓰는 의사 유리 입니다. 유리의 유년기, 어머니의 장례식부터 시작하는데요. 유리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고아가 되어 부모님과 친분이 있던 귀족 집안 토냐의 집에서 살며 유년기를 보내게 됩니다. 둘은 이성으로 끌리기 보다는 친밀함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가 되죠.

그리고 라라가 등장하는데, 아버지의 유산으로 양장점을 운영하는 마담 기샤르의 딸로, 그녀는 엄마의 사업 동료이자 남자친구인 사업가이자 변호사 코마롭스키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그녀는 예쁜 얼굴로 그의 관심을 받게 된 것에 죄책감도 느끼지만,가끔은 그것을 즐기는 자신을 보며, 기만적인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오, 이 무슨 마법의 원리란 말인가! 자신의 삶으로 침입한 코마롭스키가 순전히 혐오스럽기만 했다면 라라는 반항하며 벗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소녀로서는 자기에게 아버지 노릇을 해 주는 희끗한 머리의 잘생긴 남자가, 모임에서 박수갈채를 받고 신문에도 실리는 이 남자가 자기를 위해 돈과 시간을 쓰고 자기를 천사라 부르고 극장과 콘서트에 데리고 다니며 자기를 '지적으로 발달시켜 주는'것에 유혹을 느꼈던 것이다.-P95


이런 감정이 괴로웠던 라라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그에게 총을 발사하며 만인의 앞에서 그와의 인연에 대한 거부를 공표했고, 물론 코마롭스키는 살짝 부상만 입게되요. 이 사건 이후 라라는 어린 나이의 연인 파샤와 급하게 결혼하고 유라틴이라는 시골 마을에서의 평범한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유라는 토냐와 결혼후, 러시아 내란으로 군의관에 징집이 됩니다. 라라는 파샤와 결혼해 교사의 삶을 살지만, 라라의 과거를 알게된 파샤는 힘들어하며 군역의 의무가 없는데도 자원병으로 전쟁에 나가며 라라와 헤어지죠. 라라는 남편을 찾기위해 간호사로 일하며 전쟁터에 뛰어들고 군의관 유리와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함께 일하며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지만, 그 즈음 라라는 남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유리는 토냐에게 라라는 집으로 향하며 현실로 돌아갑니다. 사실 라라의 남편은 1917년말, 러시아에 혁명이 일어난 것을 알고 조국으로 와서 스트렐리니코프로 개명을 하고 혁명의 우두머리급이 되죠. 그는 작품에서 유리와 대조되는 인물 나타나는데요. 유리는 지극히 인간적인 인물이라면 그는 완벽히 극단적인 인물로 묘사됩니다.


스트렐리니코프는 비범할 정도로 분명하고 올발랐다. 그리고 그는 보기 드문 도덕적 순결과 공정성, 열렬하고 고결한 감정의 소유자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가장 높고 밝은 것을 동경했다. 삶을, 성실히 규칙을 준수하고 완벽을 달성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거대한 경기장으로 생각했다.

실상은 그렇지 않음이 밝혀졌을 때도 그는 자기가 세계 질서를 단순화시키는 잘못을 범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속으로 모욕을 삭인 그는, 언젠가는 삶과 삶을 왜곡하는 어두운 근원들 사이에서 재판관이 되리라, 삶을 수호하고 삶을 위해 복수하리라, 하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환멸이 그를 잔혹하게 만들었다. 혁명이 그를 무장시켰다.-P415



모스크바에 혁명 물결이 거세지자 상류층 집안이었던 유리와 토냐는 위험을 감지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유라틴 근처의 작은 시골마을인 바르이키노로 이주를 결심하죠. 그곳에서 감자를 캐며 평범한 생활을 하는 유리는 적적함을 느끼고 근처의 도시인 유라틴 도서관을 들렀다 라라와 재회합니다. 라라와 다시 만나게된 그는 지속적으로 그녀를 찾아갔고, 집에서는 토냐에 대한 최책감을 느껴요. 이에 그는 마지막으로 라라에게 인사까지만 하고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다녀오는 길에 파르티잔의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파르티잔의 포로로 길게 잡혀있는 동안, 토냐를 포함한 그의 가족들은 우익 사회주의자로 해외로 추방이 되고, 그는 파르티잔을 겨우 탈출해 라라의 집을 찾아갑니다. 유리와 라라는 재회하고, 가족들이 떠난 바르이키노로 가서 한동안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만끽합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코마롭스키가 갑작스럽게 그들을 방문하고 둘에게 닥친 위험을 알려주는데요. 스트렐리니코프가 체포되어 라라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이 위험해졌고, 지금 바로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그녀를 걱정한 유리는 그녀를 코마롭스키와 보내줘요. 그 당시 라라는 유리의 아이를 임신중이었습니다.

그들이 떠나고 다음날 어떤 사람이 그 집으로 찾아오는데요. 바로 라라의 남편, 파샤이자 스트렐리니코프였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가족을 보고 싶었던 거에요. 하지만 그는 유리를 통해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구요.

그 다음날 그는 자살한 채로 발견이 됩니다.


유리는 홀로 모스크바로 돌아가고, 예전 집안의 하인이었던 딸 마리야와 재혼하고 아이를 둘 더 갖게되요. 그러던 중 그의 심장병이 도지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의 장례식에서 이복동생 예브그라프는 라라를 만나고 잃어버린 아이에 대해 알게된다. 라라는 유리와 임신중 헤어졌는데, 그의 아이를 전쟁통에 잃어버렸고 찾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세탁부 타냐가 그들의 아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타냐의 이야기를 풀며, 예브그라프가 고아가된 그녀를 찾아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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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시즌책 (혹독한 겨울을 경험하며 한국의 겨울의 귀여움?을 느낄 수 있어요^^)

이 책은 러시아 혁명이라는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주요 사건 위주로 짧게 요약해보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네요. 특히나 러시아 특유의 이름들을 익히면서 사건들을 연결하는 부분이 어렵더라구요. 그래도 너무 아름다운 작품이었습니다. 읽는 내내 겨울 시즌책이라고 느꼈었는데요. 러시아 특유의 혹독한 겨울이 혁명이라는 고난과 역경을 만나 사람들에게 더욱 가혹하고 잔인한 겨울로 변하지만, 작가의 시적인 감각으로 나름 다듬어져 표현되는 느낌이 아이러니 하지만 묘하게 아름답기도 하고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아래 몇개만 적어놓았지만 작품에서는 이런 표현들이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도시의 초겨울 냄새가, 짓밟힌 단풍잎, 녹은 눈, 기관차의 연기 냄새, 기차역 식당의 지하실에서 구운, 막 페치카에서 꺼낸 따듯한 냄새가 났다.-P59


납처럼 고요한 잿빛 하늘에서 눈발이 하나 둘, 송이송이 흩날리다가 땅에 떨어져 풍성한 잿빛 먼지처럼 길의 움푹 팬 곳에 틀어박히기에 앞서 오랫동안 주저하듯 맴돌았다.)-P73


며칠 동안 날씨는 변덕스럽고 불안정 했으며 밤마다 축축한 흙냄새를 풍기는 따뜻한 바람이 재잘대며 불었다.-P235



영화와 음악 추천

그리고 이 작품은 영화와 함께 것을 꼭 추천드려요. 영화와 작품의 스토리가 살짝 차이는 있어요. 하지만 영화를 보면 작품의 이해도가 훨씬 올라갈 수 있고, 책을 조금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게 되더라구요. 조금 옛날 영화긴 하지만, 저는 너무 좋았어요. 인물들도 찰떡 같았고, 특히나 영화 메인 테마가 진짜 좋거든요. 영화를 보고 나머지 책을 읽는 내내 영화 음악을 들었는데. 계속 감동의 여운이 남는 느낌이었어요.


개개인의 비참함을 통해 드러난 혁명의 모순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 바로 누구를 위한 혁명이고 전쟁인가 였는데요. 개개인의 삶은 그 시대를 거스를 수 없고, 결국 휘말리게 되어, 개인의 소중한 것들과 자신마저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전쟁이 개개인들의 삶을 어디까지 비참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 전재으로 인한 가난과 기아 상태의 처참함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생이별의 비극들을 생생하게 접하면서, 동시에 현재의 평범하고 어쩌면 무료한 삶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다시한번 깨닫게 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것이란 두 번째 원의 상념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너무 다르도 너무도 뛰어나도록 새로웠다! 이건 자신의 것이나 익숙한 것, 오래된 것에 의해 준비된 새로운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이고 철회되지 않은 것, 현실이 명령한 진동처럼 느닷없고 새로운 것이었다.

이 새로운 것은 전쟁이자, 전쟁의 피와 공포, 집도 절도 잃고 흉포해지는 것이었다. 전쟁의 경험과 그것이 가르쳐준 생활의 지혜가 이 새로운 것이었다. 전쟁이 데려다준 벽지의 도시에서 전쟁 때문에 만나게 된 사람들이 또한 이 새로운 것이었다. 혁명, 그것도 대학생들의 이상화된 1905년식 혁명이 아니라 지금 전쟁애서 태어난 이 유혈 혁명, 자연력의 달인인 저 볼셰비키들이 이끄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는 군사 혁명이 또한 이 새로운 것이었다.- P293



평범하고 사적인 것들이 의미가 되고 결국 예술

그리고 이 책에 은근 러시아작가들의 작품들이 등장하는데요. 특히나 작가가 푸쉬킨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들을 이야기 하면서 자신의 소신을 밝힌 내용이 있어요. 이 작품을 읽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호들갑스러운 미사여구가 아닌 바로 평범한 것, 사적인 것들이 예술이며, 그런 것들이 더 많은 의미를 남긴다는 것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 역시 혁명이라는 역사적으로 큰 획을 긋는 휘몰아쳐지는 시대적 배경이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거의 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 안에서의 소소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욕망과 사랑, 감정들에 집중하는 것을 알 수 있었거든요.



우리는 '예브게니 오네긴'과 서사시들을 끝없이 읽고 또 읽는다. 어제 암핌이 왔는데 선물 한가득 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불을 밝힌다. 예술에 대한 대화가 끝없이 오간다.

예술은 수많은 개념과 파생적인 현상을 포괄하는 어떤 부류나 영역의 명칭이 아니라 오히려 뭔가 협소하고 집중된 것, 예술 작품의 구성에 포함되는 원칙의 기호이자 그 안에 적용된 힘이나 탐구된 진리의 명칭이라는 것이 나의 오랜 생각이다. 그리고 나에게 예술은 절대로 형식의 측면이라 대상이 아니라 차라리 내용의 신비스럽고 은닉된 부분으로 여겨졌다. 이것은 대낮처럼 분명하여 나는 그것을 모든 결로 느끼지만, 이 생각을 어떻게 표현하고 정의할 것인가?

작품이란 주제, 정황, 플롯, 주인공 등 많은 것을 통해 말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속에 담긴 예술을 통해 가장 많은 말을 한다. '죄와 벌' 페이지에 담긴 예술은 라스콜니코프의 범죄보다 한층 더 충격적이다.

원시 시대의 예술, 이집트와 그리스의 예술, 우리 시대의 예술은 분명히 하나이며, 수천 년에 걸쳐 이어진 한결같은 예술, 단수로 남는 예술이다. 이것은 삶에 대한 생각이자, 모든 것을 포괄하는 그 폭넓음에 있어 개별적인 낱말로 분해되지 않는 주장이다. 이 힘의 입자가 보다 복잡한 어떤 혼합물의 구성요소가 될 때 예술의 한합은 나머지 모든 것의 의미를 능가하여 묘사된 것의 본질이자 영혼의 토대가 된다.-P66(2권)


업무와 치료와 쓰는 일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핍과 방랑, 불안정하고 빈번한 변화가 아니라 우리 시대에 널리 확산된 호들갑스러운 미사여구의 정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바로 미래의 아침놀이나 새로운 세계의 건설이니 인류의 횃불같은 것 말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처음에는 얼마나 폭넓은 상상력인가, 알마나 풍부한가 하는 생각이든다. 하지만 실상은 재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게 허풍을 떠는 것이다.

오직 평범한 것만이 천재의 손을 스칠 때 동화가 된다. 이 점에서 가장 훌륭한 선례가 푸시킨이다. 성실한 노동과 의무와 일상의 풍습들을 얼마나 훌륭하게 찬미하는가! 지금 우리들 사이에서는 소시민, 속물같은 단어는 비난조를 띠게 되었다. ~

러시아의 모든 요소 중에서도 나는 지금 푸시킨과 체호프의 러시아적인 천진함, 인류의 궁극적인 목표나 그들 자신의 구원처럼 거창한 것에 대한 수줍은 무사태평을 제일 사랑한다. 그들도 이 모든 문제를 훌륭하게 헤아렸지만 굳이 나서는 일은 없었다.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고 또 분수에도 맞지 않았던 것이다.

고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음을 준비하고 염려하고 의미를 구하고 결론을 내려고 했다. 반면, 이쪽들은 끝까지 예술적 소명이 부여한 현재의 개별적인 부분에 천착하고 그것이 교체되는 동안 눈에 띄지 않게 아무와도 상관없는 개인적이도 사적인 삶을 살았는데, 지금은 그 사적인 삶이 보편적인 관심사가 되어 나무에서 딴 잘 익은 사과처럼 그 스스로 후대까지 이르러 더 많은 단맛과 의미를 흘린다.-P72(2권)




와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 많이 했는데요, 브런치에 연재를 하다보니 ㅎㅎ 결국 다 읽었습니다. 결코 쉬운책이 아니에요. 저도 살짝 힘들었거든요.^^;; 하지만 이 책을 읽는 것에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 이 평화를 쭉 ~ 지켜주고 싶다는 간절함. 비참한 역사를 반복하면 절대 안된다는 책임감. 여러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올라오더라구요.

(아 책을 다 읽었다는 뿌듯함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ㅎㅎ)

우리 일상의 삶은 절대 시대적 정치적 상황과 별개로 갈 수 없다는 것. 즉 우리가 계속 관심을 가지고 깨어있는 사람이 되어, 비참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지금 가장 추천드리는 이유, 겨울에 더욱 찰떡인 책. 올 겨울에 방구석 독서로 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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