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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누구니?

너가 시작이었어.

by 김편선

집안에서 뒹굴거리고 있을 때 걷기는 어려운 수행같다는 생각을 들게 하지만, 막상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연 순간부터 걷기는 내게 힐링이고 축복이다. 힐링이며 축복인 걷기인데, 매일 가장 힘든 것은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여는 일이다.



이날도 그랬다.



오전 9시가 넘어서 운동을 시작했으니 무던히도 현관문을 열기가 어려웠나보다. 그래도 큰 용기를 내 이곳으로 왔다. 테크길이 잘 되어 있고, 햇살과 그늘을 적절하게 즐길 수 있는 곳, 게다가 저수지 물을 바라보노라면 참 평온해지는 이곳. 오늘도 천흥 저수지에 왔다.



걷다보면 간혹 물오리(청둥오리)도 만나고, 길고양이들도 만나고, 쥔장과 산책 나온 각양각색의 강아지들도 만난다. 운이 좋은 어느 날은 고라니를 만나기도 했다. 몇몇 농장에서 키우는 듯한 큰 개들조차도 순하디순한 이곳이다. 음악이나 오디오북이나 유투브를 들으며 걸어도 좋지만, 그저 걸어도 좋은 곳이다. 별달리 명상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명상이 되는 곳이다. 때론 건강에 가장 좋다는 '멍때리기'를 자연스레 하게 되는 곳이다.



데크길을 한 바퀴 돌고, 두 바퀴를 거의 돌았을 때였다.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시원한 데크길에 뭔가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멀리서 보기에는 미동도 없어서 혹시 아프거나 죽어있는 뭔가가 아닌가 싶었다.



점점 가까이 다가가본다.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매미 소리는 드높은데.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고양이이다. 혹시 죽었나?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며 "야옹아"하고 불러 보았다. 두 번쯤 부르니 살짝 귀가 움직인다. "휴~~~"



"우쭈쭈쭈~"해주니

이 녀석도 "야옹~"하고 대답하며 일어난다.



와! 너무 예쁜 고양이다. 잘은 모르지만 품종묘인듯 싶다. 이런 애가 왜 여기 있을까? 혹시 이 근처 빌라에 사는 고양이가 잠깐 외출한 것일까? 아님 유기된 것일까? 사람에게 너무 살갑다. 겁을 내지도 않고, 애교도 많다.



예쁜 아이를 보면서 너무 사랑스럽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지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사람에게 경계심이 없는 아이들은 간혹 동물학대의 대상이 되기도 하니까. 내일은 꼭 캔을 챙겨서 오겠다고 약속하고 이 아이와 헤어졌다.



이 아이가 시작이었다.

내가 이곳에 사는 길고양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그 시작.



이 아이를 만나고 나니 걸을 때마다 여기저기 길고양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덥다 보니 나무 그늘 아래에, 데크길 아래에, 주차한 차들이 만들어주는 그늘 아래에...

그렇게 곳곳에 생명들이 살고 있었다.



그 이후로 이 아이에게 두어 번 캔을 먹였다. 그리고, 이 아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 아이를 예뻐하던 사람들이 많으니 그 중 누군가를 집사로 삼았을 수도 있다. 어쩜 외출냥이여서 집으로 돌아간 뒤 집사의 관리로 인해 바깥으로 못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아이를 만나지 못하지만 나는 계속 사료와 캔을 챙겨서 다닌다. 처음에는 우리 도도냥의 것들을 조금씩 갖고 다니다가 요즘은 이 아이들에게 먹이려고 따로 사료를 주문했다. 우리 도도냥은 체중 조절 사료를 먹고 있는데, 길냥이들에겐 오히려 영양 듬뿍 사료가 더 적절할 것 같아서. 우리 도도냥은 하루에 츄르 두 개 정도 먹는데, 길냥이들에겐 양 많은 캔을 주려고 챙겨서 다닌다.



넌 누구니?



나는 이대도록 그 답을 얻지 못했지만,

사람과 길고양이와 그리고 여러 생명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곳. 천흥 저수지.

이곳을 나에게 선물한 너를 정말 사랑한다.



지금도 잘 살고 있지?

행복하지?

행복하렴.



너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천흥 저수지. 그곳의 길냥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그 시작이 되어준 고양이




< 이 글의 주인공. 회색 고양이>







<천흥 저수지, 아름다운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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