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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 하나의 기쁨

그리고, 그 성급함에 대하여...

by 김편선

내가 함께 살고 있는 도도냥은 뚱냥이다. 그래서 다이어트 사료를 시간 맞춰 먹고, 간식은 하루에 츄르 한두 개 정도이다. 습식캔은 여전히 길냥이로 살고 있는 도도냥의 엄마 이쁜이를 돌봐주시는 분에게 종종 보내드린다. 사료와 함께. 자주는 아니지만 그렇게 간혹 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분이 계셔서 살던 동네를 마음 편히 떠나올 수 있었다.




천흥 저수지.

이곳에 오면서, 회색냥이를 만나면서 습식캔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사료보다 캔을 먼저 주문한 건 어쩜 급하게 친해지고 싶은 성급한 내 마음의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 그랬나 보다.

나는 이 아이들과 빨리 친해지고 싶었나 보다.




캔을 들고서 '오늘은 어떤 냥이랑 만날까'하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어떤 냥이들은 다가오지 못하고, 또 어떤 냥이들은 얼마쯤 거리를 두고 밀당을 하고, 가끔은 그냥 덥석 앵겨드는 냥이들도 있다.

냥냥거리며 먹는 모습을 보며 너무 사랑스럽다. 정말 한없이 챙겨주고 싶다.

적당히 거리를 두며 다가올까 말까 고민하는 냥이들을 보면 슬쩍 자리를 피해 준다.

다가오지 못하는 녀석들을 보면 안타깝다. 내 마음을 꺼내 보여주고 싶다.




우리는 여행지에서는 평상시 안 먹던 것을 먹어본다. 그 여행지의 특산 음식을 먹기도 하고, 카페에 들러 달달한 디저트를 즐기기도 한다. 그 순간 행복하다. 배불러도 떠나온 여행이니까 자꾸 먹는다. 멋진 경치를 보면서 먹는 음식은 다 맛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다른 것을 생각한다.




우리는 집에서는 밥을 먹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밥은 그냥 먹는 거지 그렇게 맛있다고 느끼면서 먹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김치찌개, 된장찌개, 청국장 이런 집밥을 생각한다. 집밥을 먹고 싶어 한다.




캔을 들고 다니는 나를 보며 생각한다.

이곳은 이 아이들의 집.

나는 집에 살고 있는 냥이들에게 집밥을 챙겨 먹이지 않고, 잔뜩 달달한 디저트만 먹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친해지고 싶은 그 성급함 때문에.




그래서 이제는 사료를 함께 챙겨 다닌다.

급식소에 건사료를 풍성하게 부어준다. 너희의 하루하루가 배부르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내가 이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에는 습식캔 듬뿍 넣어 비빈 습식캔비빔사료를 준다.

고모, 이모, 삼촌이 놀러 온 날 짜장면을 시켜 먹고 탕수육을 시켜 먹듯이, 내가 너희와 만나는 그 시간은 너희에게 반가운 손님이 온 시간이길 바라며.




좀 천천히 친해져도 괜찮아.

아니 친해지지 않으면 또 어때.

너희는 너희의 삶을 잘 살아가고, 나는 또 그런 너희를 보며 행복하면 됐지!!!




나는 오늘도 천흥 저수지에 간다.

사료와 캔을 들고.

때로는 우리 도도냥의 츄르 몇 개 슬쩍 챙겨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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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도 맛나게 먹고 애교도 맛나게 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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