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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이 내 새끼에요.

by 김편선

매일 나는 천흥저수지로 향한다. 그곳엔 내가 돌보는 길고양이들이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풍경도, 고양이들도 조금씩 변하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그들의 끼니를 챙기는 일이다.



오늘도 사료가 담긴 그릇을 내려놓자, 작은 고양이들이 잽싸게 달려온다. 아기고양이 둘. 아직 털이 보송하고 몸집이 작아 아기 티가 난다. 이리저리 부딪히며 그릇을 차지하려고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귀엽다. 그렇게 정신없이 먹고 있는 아이들 뒤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고양이가 조용히 앉아 있다.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털. 아이들을 지켜보는 그 눈빛이 묘하게 따뜻하다. 마치 엄마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 고양이는 사료에 달려들지 않았다. 대신 가까이 다가가더니, 먹고 있는 아기고양이들의 머리를 한 번씩 핥아준다. 마치 ‘천천히 먹어, 많이 먹어’라고 말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보통 길고양이들은 먹을 것을 두고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몸집이 크고 힘이 센 고양이들이 먼저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고양이는 달랐다. 아기고양이들이 배가 부르도록 먹고 난 뒤에야 조용히 남은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 저 고양이가 이 아기고양이들의 어미일까? 길고양이들의 관계는 종종 예상 밖의 모습으로 흘러간다. 때로는 친절한 수컷 고양이가 아기고양이들을 돌보기도 하고, 형제처럼 지내던 고양이들이 함께 서로를 챙기기도 한다. 피가 섞이지 않았더라도, 가족 같은 유대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저 조용한 희생과 배려만으로도 충분했다. 진짜 어미이든 아니든, 저 고양이는 아기고양이들에게 자신이 먹을 것을 양보하고 있었다. 자신이 배가 고파도, 먼저 먹겠다고 아기고양이들을 밀어내지 않았다. 사람보다 더 사람다운 모습이랄까.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양보하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자신이 배고파도 상대에게 먼저 내어주는 일, 나보다 상대가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요즘처럼 각자도생의 시대에 이런 마음을 가진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저 작은 고양이도 할 수 있는 일을, 우리는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아기고양이들은 배를 채우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제야 어미 같아 보이던 고양이는 남은 사료를 천천히 먹었다. 나는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 작은 그릇에 물을 부어 주었다. 그제야 녀석이 나를 한 번 쳐다본다. 고맙다는 눈빛일까, 아니면 그저 우연일까. 짧은 순간 눈이 마주쳤지만, 나는 괜히 마음이 따뜻해졌다.



천흥저수지의 풍경은 그렇게 흘러갔다.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조금씩 양보하고, 또 누군가는 그 따뜻한 마음을 보며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렇게 작은 온기가 이 저수지에 스며든다. 내일도 나는 이곳에 올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천흥 저수지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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