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천흥저수지.
예전부터 종종 이곳에 갔었다.
등산하기 위해 지나가기도 하고, 둘레길을 걷기도 했다.
지인들이 놀러오면 함께 걷기도 하고,
비오는 날이면 빗소리를 들으러 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많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무더웠던 지난 해 8월.
한 아이를 만나며 시작된 인연
그렇게 이곳 천흥저수지에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을 맞았다.
여름.
나른한 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그늘이면 몸을 축 늘이고 누워있는 모습, 냥냥거리며 발에 감기는 모습, 밥을 주고 나면 한참을 따라오던 모습.
그렇게 조금씩 이 아이들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가을.
저수지 물빛에도 가을이 가득했다.
가을은 참 예쁘다.
아이들과 조금씩 친해지고 있었다.
부르면 냥발로 달려오는 아이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밥 주기를 기다리는 아이들.
또 그렇게 이 아이들 속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겨울.
우리의 겨울을 따뜻했을까?
그저, 아이들의 겨울이 따뜻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건사료를 넉넉하게 집안에 넣어주고, 습식사료는 꼭 옆에서 먹는 걸 지켜봤다. 얼면 먹을 수 없으니까.
집안에 담요를 깔아두고, 종종 햇볕에 말려주었다.
가끔은 핫팩을 넣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
날씨가 따뜻해지니 너무 좋다.
TNR를 하고 온 아이들도 종종 보인다.
출산과 육아의 늪에서 벗어난 냥이들아. 참 다행이다.
앞으로 더 건강하게 살자.
이렇게 나와 고양이와 또 다른 많은 생명들의 공존은
다시 봄을 맞았다.
다시 시작하는 봄.
적당한 거리를 지키면서 그렇게 우리의 봄은 다시 시작되고 있다.
사람과 길고양이들과 또 다른 많은 생명들이 공존하는 곳.
천흥저수지. 이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