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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꿈의 숲 10화

10화 혼자 걷는 길

탐험의 시작!

by 우산을 쓴 소녀


글, 그림: 우산을 쓴 소녀


10. 혼자 걷는 길

-탐험의 시작-

등장인물: 루미나, 샘, 에드, 카일라


섬총각 도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위에서, 루미나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잠시 그녀를 바라본 샘은 조용히 발길을 돌려 말을 건넸다.


“루미나,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아니? 아니… 생각이 좀 많아서…”

샘은 그녀의 상황을 눈치챘고,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숲길을 걷던 일행은 나무들 사이로 붉은색 형체를 발견했다. 에드가 가장 먼저 그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카일라도 빠른 걸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먼저 그곳에 도착한 에드는 모두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기 좀 봐요! 이거 꿈의 숲 열차 같은데요? 우리가 처음 타고 온 그 열차요.”

에드는 꿈의 숲 열차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의아해하며,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려는 듯 주위를 살폈다.


바로 그때였다! 열차가 적막을 깨뜨리고 거슬리는 기이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에드는 순간적으로 카일라를 열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서 있던 샘의 팔을 잡아, 함께 열차 위로 미끄러지듯 올라탔다.


열차가 출발하자 그들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 순간도 잠시, 저 멀리 희미해져 가는 루미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모두 허탈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들이 떠난 줄도 모른 채, 루미나는 한참 동안 땅만 보며 걸었다. 날이 저물어 갈 무렵, 그녀는 주변에 자신 혼자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샘! 샘! 카일라! 에드! 어디 있어요! 다들 어디 간 거예요!"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외쳤지만 숲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이 떠난 줄도 모른 채, 루미나는 한참이나 땅만 보며 걸었다. 시간이 흐르고 날이 저물어 갈 무렵, 그녀는 비로소 혼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꿈의 숲에 온 뒤로 줄곧 누군가와 함께였던 루미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숲의 온기와 숨결을 느끼며 홀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자 걷던 그녀 앞에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어떻게 된 일이지? 방금까지 그냥… 숲이었는데, 왜…"

그녀가 뒤를 돌아봤을 때, 꿈의 숲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눈앞으로는 외부 세계를 닮은 큰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보다 더 간절하게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그녀는, 익숙한 느낌이 스치는 파란 간판의 음식점을 발견했다.


"분명 한 번쯤 와본 것 같은데… 확실한 기억은 아니지만, 어쩌면 꿈에서 봤을지도 몰라."

그렇게 익숙한 발자취를 따라 걷던 그녀는 또 한 번 또렷한 기억이 떠오르는 한 언덕길을 발견하였다.


“뭐야? 이 기억은?”

그녀는 밤이 되고,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시 전체를 달렸다. 그렇게 애써 찾아 헤맸지만, 그곳에 표류하거나 정착한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익숙하지만 낯선 길 위에서, 밤과 낮이 여러 번이나 바뀌는 것도 잊은 채 그녀는 언덕길을 돌고 또 돌았다.

익숙한 음식점 간판들을 되뇌고, 또 되뇌며…


그렇게 그녀는 오랜 시간, 익숙한 도시 한복판에 머물렀다.


어딘가 남아 있을지도 모를 표류자의 흔적을 찾아, 그녀는 익숙한 간판 아래를 헤매고, 셀 수 없이 많은 상점과 음식점을 들락날락거렸다.


여전히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고, 누군가 다녀간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마트의 진열 상품들은 마치 이제 막 진열된 듯 정갈하게 놓여 있었고, 커피 체인점들의 기계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윙윙거렸지만, 그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루미나는 도시의 작은 소음조차 존재하지 않은 그곳에 홀로 남겨진 기분을 가만히 느끼기 시작했다.


“적막해…”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란 카나리아 두 마리가 그녀의 곁으로 날아왔다. 루미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카나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카나리아가 떠나자 정적이 찾아왔고, 그녀는 잠시 쉴 곳을 찾아 침대 매장으로 들어섰다. 루미나가 잠시 눈을 붙인 사이, 해는 저물었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도시 전체가 깜깜해진 후였다. 평소 외로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그녀였지만, 그동안의 여정이 그녀를 길들인 모양이었다.


루미나는 매장에 있던 이불들을 모두 모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포근히 감쌌다.


다시 눈을 감으려던 찰나, 매장 창 너머 맞은편 인도 위로 어렴풋한 사자 형상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두려움도 잠시, 눈꺼풀이 스르르 감기는 것을 억지로 참으려 애썼지만, 너무나 고단했던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뭐지?… 사자?…”


다음날 아침.


짹--짹--


“꿈이었구나. 사자가 있을 리가 없지...”

루미나는 마트에 들러 평소 좋아하던 간식 몇 개를 챙기고, 냉동식품들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녀는 혼자 있는 것에 금세 익숙해진 듯 그곳의 모든 것들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외부 세계를 혼자 만끽하는 기분이네? 섬총각처럼 나도 이곳에 정착하게 되는 걸까? 아무래도 내가 적응하기에 이만 한 곳도 없으니…"


그녀는 그곳의 지리를 어느 정도 익혔고, 시간이 흐르자 길에서 만나는 동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법도 터득했다.


루미나는 펫샵에 들러 길고양이와 강아지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들을 몇 개씩 집어 들고 와, 매일 같이 동물들에게 먹이를 나눠주는 낙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가끔 떠오르는 샘의 생각에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빠져나가려고 해도 도시의 끝을 알 수 없는 루미나로서는 하루하루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일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골목길에서 낯익은 담벼락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전봇대가 하나 서 있었고, 바로 옆으로는 마을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그녀는 녹색 버스정류장에 앉아, 오지 않을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때,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조용히 그녀의 곁을 지켰다.


“너라도 함께라서 다행이야. 그렇지?”

루미나는 품에서 츄르 하나를 꺼내 고양이에게 건넸다.


“난 배가 고프지 않은데, 너는 배가 고픈 모양이로구나? 그나저나 기약 없이 머물게 되었네. 별로 나쁘진 않아. 이 정도면 뭐, 외부 세계보단 평화롭군…”


외부 세계와 꼭 닮은 그곳에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루미나의 마음은 평온해졌다. 영원히 이곳에 정착할 줄로만 알았던 그녀는 버스정류장 의자에 누워, 하늘에 떠가는 구름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었다.


그때, 녹색을 띤 버스 한 대가 그녀 앞에 멈춰 섰다.


“어?! 뭐야…”


버스는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몸을 흔들어 대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고 파릇파릇한 이파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나 데리러 온 거야?”


버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버스의 문은 과격하게 열렸고, 계단은 혓바닥처럼 바닥까지 내려오며, 돌계단을 만들어 주었다.


“타라는 소리지? 야옹아! 같이 갈래?”


루미나는 버스에 오르며, 냐옹이를 불렀지만, 고양이는 새침하게 돌아서며, 어디론가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렇게 루미나는 스스로 움직이는 초록색 마법 버스를 탔다.


마법의 버스는 한 호텔 앞에 그녀를 내려주었다.


호텔 안으로 들어간 루미나는 프런트에 무작위로 놓여 있는 열쇠들을 발견했다. 각 열쇠에는 동물 형상이 조각되어 있었고, 그녀는 무심결에 카멜레온 문양이 조각된 열쇠를 집어 들어 2003호 방에 머물게 되었다.


그녀는 작고 아담한 호텔의 방에서 샤워를 하며, 그 간의 여정으로 쌓인 피로를 물과 함께 깨끗이 흘려보냈다.


다음날,

그녀는 꿈의 숲에 온 이후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아침을 맞았다.


호텔 너머로 멀리 보이는 바닷가를 바라보던 그녀는 그곳이 외부 세계 도시의 탈출구임을 확신했다. 루미나는 어느 때보다 용감하게 길을 나섰다. 길을 잃는다는 두려움이 더는 그녀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바다를 향해 걷다 보니 넓게 펼쳐진 항구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 냄새와 함께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정박해 있는 배들의 모습이 그녀의 눈앞에 가득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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