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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ing solo May 04. 2024

<미친년의 결혼식>

〔소설〕결국 해피엔딩 2


엄마 마음속 부레의 내용물이 공허 또는 허전함이라는 것은

여전히 대문 밖 외출을 안 하신다는 것으로 미루어 안다.

심지어 당신 딸내미 상견례에도 안 가면 안 되냐고 하셨다.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는 엄마의 마음속에는 완이가 산다. 

사실 엄마의 공기주머니에는 완이로 가득 차있다.


세상에 발을 내디딜 수 없는 엄마,

저 혼자 행복한 세상에서

그것과 대비되어 또렷해지는 당신의 불행을 직면할 용기가 없는 거지.

생사를 알 수 없으니 가슴에 묻을 수도 없고 안 그럴 수도 없는 완이는 공기보다 더욱 가벼워져 엄마의 마음속 주머니의 내용물이 되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들 같은 사위가 더할 나위 없이 살갑게 굴어주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똥강아지들이 이쁜 짓 해주고

그렇게 우리 집은 가득 찼어도

엄마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다 채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거는 그거고 이거는 이거로 제각기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하물며 나도 그런데.

좋으면 좋을수록 슬프다니까.

태어나 제일 아름다워야 하고

더없이 행복해야 할 내 결혼식은 어쨌다고.

아주 그냥 진상이었어.


넷이어야 했을 결혼식장에 딸랑 둘이었던 엄마와 나,

작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가려는데 눈물이 나려 했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고

우리 오빠가 없어서 그 어느 때보다 서글펐어.

멋진 우리 아버지 손을 잡고 이렇게 가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무 허전해, 무슨 결혼식이 이렇게 쓸쓸하냐.


그러다 엄마랑 눈이 마주쳤어.

붉스그레한 엄마의 눈자위

울고 있는 우리 엄마,

엄마도 나랑 똑같구나.


꾹 참았던 눈물의 샘이 터졌다.

입이 씰룩거려졌다.

어깨도 풀썩거리기 시작했다.


“왜요?”

마주 선 그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냥 눈물이 나요.”

“오늘 너무 이쁜데 이쁘게 웃어요. 좋은 날이잖아요.”


좋은 날이라 슬픈 거예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흐느낌이 소리로 새 나오기 시작했고 점점 커졌고

큰 울음에 어깨가 들썩여 주저앉았다.


모두들 무슨 시추에이션이냐 했겠지.

결혼식이 그렇게 슬픈 거였어? 무슨 일이야? 뭐 억지로 팔려가는 거야?

그래 내가 미친년이라서 그래.

니들이 알겠냐. 저렇게 쓸쓸히 앉아있는 우리 엄마만 알지.

나만이 우리 엄마의 마음을 알 듯이.

그가 마주 앉아  나를 안아주었다.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웅성거림은 잦아들었고 박수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나왔어.

나는 이제 나의 슬픔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보듬어 안아 줄 사람이 있는데

저기 혼자 울고 있는 우리 엄마의 쓸쓸함은 어쩌면 좋아.

나는 거의 미친년처럼 울었다.


그렇게 결혼하고

우리 집으로 들어와 아들이 되고자 했던 남편은

엄마가 세상으로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부단히 매우 끈질기고 집요하게 틈틈이 기회를 노려 반복적으로 시도했다.

진심으로.


“어머니, 푸성귀 딴 거 경로당에 가져다 줄 건데 저랑 같이 가요.”

“어머니, 호박이랑 가지 딴 거 시장 노점 벌여 놓고 팔았어요. 만 원 벌었어요. 웬 젊은 남자가 이런 일 하냐고 사람들이 되게 재밌대요. 저도 재미있었어요. 다음엔 어머니도 같이 가보실래요?”

“어머니, 요 옆 마트에 가셔서 드시고 싶은 거 같이 살까요?”

“어머니, 시장 가서 예쁜 옷 사드리고 싶은데 같이 가요.”

라고 하면 엄마의 대답은 똑같다.


“아니, 이서방 혼자 가, 혼자 사와, 이서방이 사주는 거 다 맘에 들어. 아무거나 사 와.”


엄마의 원망은 세상으로 온전히 쏠려있다.

저 혼자 멋대로 행복한 세상,

손잡고 함께 나갈 아들이 없으니

엄마는 뒤돌아 세상을 외면했고

완이가 남기고 간 껍질에 웅크린 달팽이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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