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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나날
02화
평범함 조각
소소함만으로도 인생의 러닝 타임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by
가담
May 24. 2023
자기 전에
영화 한 편을 보려고
넷플릭스에 들어가 보니,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영화 리스트에
일본 영화가 꽤 많이
차지하고 있다.
너무 잔잔한 영화는
별로 안 끌린다고 하면서도,
결국에는 뭘 볼지 고민하다가
일본 영화 특유의 포근함에 이끌려
플레이 버튼을 누르게 된다.
지금껏 봐왔던 일본 영화는
엔딩을 보기까지
그다지 큰 집중력을
요구하지 않았다.
지루하다 싶을 때
핸드폰을 한 번씩 보기도 하고,
세탁이 끝났다는
경쾌한 멜로디가 들리면
잠시 빨래를 널고 오곤 했다.
일본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다른 나라 영화에 비해
소재가 참 소소한 것 같다.
도라에몽이 맛있게 먹던
팥이 들어간 빵을 만든다거나,
고양이를 빌려준다거나,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그런 소박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누군가 한 명쯤 납치되고
히어로가 시민을 구해야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화려한 영화와는 달리,
별 의미 없는 주제로
2시간가량을
가득 채우는 일본 영화가
지극히 평범하게 느껴진다.
가끔 유튜브에서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다 보면,
나만 이렇게
재미없게 살고 있는 건가
싶어질 때가 있다.
기상-출근-퇴근 속에서
일주일을 평범함으로
채워가는 동안,
그 사람들의 일상은
내 세상과는 조금 다르게
매 순간이 특별한 이벤트로
가득한 느낌이다.
나도 외국에서 살고 있다면,
나도 영화에 나올법한
예쁜 집에 살고 있다면...
현실을 뒤집어보는
의미 없는 가정법을
늘여놓다 보면
일상의 평범함이
더 뚜렷하게 느껴진다.
인생이 평범한 거 투성이라 그런지,
별거 아닌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일본 영화에
묘한 친근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주말 낮에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초록색 블라인드 사이로
고양이 두 마리가
차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숨바꼭질을 하는 모습이 보이고,
또 다른 하루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근처 공원에 들러보니
지금이 어떤 계절인지
확연하게 알려주는 꽃이
여기저기 가득했다.
평범함이 주는
지루함 속에 살고 있어서인지,
지나가는 고양이와
흔들리는 꽃잎 같은
자그마한 주변의 움직임에도
고개를 쉽게 돌리게 된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던
일상의 평범함 조각을
사진이나 글로
주섬주섬 담아보니,
당시에는 몰랐던
나름대로의 특별함이
조금은 보이는 것 같다.
잔잔한 일본 영화도
흥미진진한 다른 영화와 같이
기승전결로 이루어져 있듯,
내 인생의 평범함에도
때로는 지루함이,
때로는 절망감이,
때로는 뿌듯함이 담겨
나름대로 다양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내 인생 속에
온몸에 철갑 슈트를
두른 영웅은 없더라도
단팥빵과 지나가는 고양이
그리고 단골 카페 하나 정도는 있으니,
이런 잔잔함과 소소함만으로도
인생의 러닝 타임을
가득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졌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그저 그런 하루의
시작을 플레이하며,
그날의 러닝 타임을 채울
평범한 조각을 찾기 위해
오늘도 고개를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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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보통의 나날
01
첫 페이지에 앞서
02
평범함 조각
03
익숙함 속의 안정감
04
틈 : 마음에 들다
05
흔적
보통의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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