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정착하고 있는
본가의 아파트는
부엌 창문을 통해 산이 보이는
조금은 오래된 집이라 그런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뜬금없는 장소에서
벌레와 마주칠 때가 있다.
화장실 바닥 구석에
뻔뻔스럽게 누워있거나,
커튼 자락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천장과
하나가 되어 있기도 하다.
언니와 내가 벌레를
가장 먼저 발견하는 날이면,
우리 집 말랑이보다도 요란스럽게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호들갑을 떨다가
약국에서 산 강력한 살충제를
마구잡이로 뿌리고 난 후에
엄마 아빠를 애타게 부른다.
그럴 때마다 엄마와 아빠는
이걸 왜 못 잡냐며 투덜거리시면서,
얇디얇은 휴지 쪼가리로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속 시원하게 잡아주신다.
주말 아침에 밥을 먹고 나니,
하얀 천장에 생긴
낯선 얼룩이 눈에 거슬렸다.
자세히 보니 새끼손톱보다
약간 작은 검정 벌레였는데,
때마침 화장실에서 나와
부엌을 지나가는 언니를
엄마가 다급하게 붙잡으신다.
네가 키가 크니까
벌레 좀 잡아보라며,
손수 식탁 의자를 끌어다 주시고
정성스럽게 휴지도 챙겨주신다.
이 순간만큼은
언니보다 키가 작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겨우 10cm 차이로
땅꼬마라고 놀림받던
지난날의 서러움이
한순간에 내려가는 것 같다.
왜 하필 나냐며
펄떡 뛰는 언니를 중심으로,
멀뚱히 서있던 엄마와 나는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분주히 흩어져서
반찬통 뚜껑 맞추기에 몰입했다.
언니가 체념한 듯
식탁 의자를 밟고 올라가
천장을 향해 손을 뻗는데,
뭔가 번뜻 생각났는지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잡다 말고 어디로 도망갔냐는
엄마의 잔소리에,
아무래도 장비를
더 늘려야 될 것 같다며
다른 한 손에
돌돌이 테이프를 들고서
다시 의자로 올라간다.
누가 보면 인테리어
공사하는 사람인 것처럼,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천장에 테이프를 붙인다.
겁먹은 강아지가
더 크게 짖어대듯
작은 벌레 한 마리를 잡겠다며
다양한 도구로 무장한
173cm 거구의 모습을 보니,
인간의 하찮음과 나약함이
새삼 느껴져서 깔깔 웃어버렸다.
언니가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벌레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벌레를 잡지 않겠다는 구실로 펼쳤던
엄마와의 합동작전 덕분에
어느 때보다도
아침상을 빠르게 치우는
신기록을 세워버렸다.
나약함을 핑계 삼아
가끔은 다 큰 나이에
부모님께 응석도 부려보고,
하루는 서로를 의지한 채
옹기종기 모여서
한바탕 크게 웃어보기도 하며,
때로는 엉뚱한 곳에서
의외의 장기를 발휘하기도 한다.
유난히 식탁이 반짝거리는,
나약하지만 빛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