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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마야 Dec 30. 2022

가족 같은 소리

 

나에게 '가족'이라는 소리는 지겹다는 생각과 함께 분노를 일으켰다.


바쁘게 일반인처럼 살다가도 문뜩 가족이 생각나는 날이면 우울해져 잠을 설쳤다. 나에게 가족은 분노와 우울, 증오와 안쓰러움, 원망과 책임감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한꺼번에 느끼게 하는 그런 아이러니한 소리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딸바보 아빠, 든든한 엄마, 가족의 사랑이 담긴 모습이 나올 때면 보는 것만으로도 어색해서 몸이 배배 꼬였다. 


고장 난 부품을 애써 무시하고 삐그덕거리지만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탈이 났다. 수많은 감정이 뒤엉켜 가족을 생각하지 않을 때도 불쑥불쑥 튀어나왔고, 낮밤 할 것 없이 나를 괴롭혀댔다.


그래서 결심했다.

지금껏 외면했던 뒤엉킨 감정을 풀어 나에게 고발하려 한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며 모든 사건과 사실을 방관하는 양측 할머니 할아버지, 자신의 상처가 가장 아파 조금만 건드려도 터져버리는 엄마, 도대체 생각을 알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아빠를 대신하여 내가 고발한다.


그리고 스스로 고발하며 정리되는 감정을 갖고, 가족이라는 소리에 나의 의미들을 결합시켜 나만의 단어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그런 일반적인 가족의 의미가 아닌, 내가 정리한 단어로 세상을 살아가야 삐그덕 대지 않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내 가족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기독교라는 집안 특수성부터 설명을 해야 한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엄청난 기독교 집안이다. 양가에 목사가 여럿 있고, 각 지역에서 개척교회는 물론, 명절날 모이면 부흥회가 열리는 그런 집안이다. 아빠도 목사, 외할아버지도 목사, 이모부도 목사, 작은할아버지도 목사, 사촌오빠도 목사인 우리 집은 적어도 남들이 볼 때는 너무나도 홀리한 가족 그 자체였다. 우리 집안의 실체를 모르는 남들 눈에는 사랑이 넘치고 서로서로 잘 배려해 주고,내 새끼를 금쪽같이 키우며 자식교육도 올바르게 시키는 그런 집으로 보였을 거다. 


멀리서 보면 천국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가정폭력과 외도, 사기와 가난이 난무하는 지옥이었다.


성스럽고 밝은 교회에서 가장 어두운 곳이 우리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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