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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마야 Dec 30. 2022

박삼한사온

'아빠'라는 소리 정리하기(1)

'박삼한사온' 별명 붙이기를 좋아하는 엄마가 붙인 아빠의 별명이다. 9살 때쯤이었나 엄마랑 같이 걷고 있었다.


"네 아빠는 삼한사온같아. 삼일은 춥고 사일은 따뜻한 겨울 날씨처럼. 박 씨니까 박삼한사온이네"


당시 삼한은 이해가 됐지만 사온은 이해되지 않았다. 나에게 박삼한사온씨는 칠일이 추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족을 향한 물리적인 아빠의 폭력은 7살 때였다. 바닥에 펼치는 밥상에서 밥을 먹다가 엄마 아빠의 언쟁이 시작됐고, 나는 애써 모르는 체하며 밥을 계속 먹었다. 젓가락질이 서툴러서 교정을 도와주는 어린이 젓가락을 하고 반찬을 집으려 손을 뻗었는데 밥상이 날아갔다.


바닥에는 밥과 반찬들이 나뒹굴었고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는 극에 달했다. 엄마는 울면서 바닥에 앉아 등을 TV 선반에 기대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마 그때 전화를 걸었던 게 친할머니였던 것 같다. 엄마는 전화기 너머로 방금 자신이 당했던 일을 울음과 함께 토해내기 시작했고, 아빠는 눈이 돌아갔다.

그대로 엄마 머리채를 잡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지 몇 초 안 되어 아빠가 나왔고,

아빠는 "너 오늘 좀 맞자"라는 말과 함께 신발장에서 길쭉한 구둣주걱을 가지고 다시 방에 들어갔다.


방에서는 엄마의 비명과 아빠의 고함이 들렸다. 7살의 나는 울면서 굳게 잠긴 방문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연신 엄마를 불렀다. 4살 남동생도 나를 따라 울며 방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때부턴가 엄마는 우리 남매의 2층 침대에서 남동생을 안고 같이 잤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물리적 폭력이 있던 그날, 아빠는 외할아버지가 개척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있던 시절이었다. 엄마 말로는 그즈음부터 아빠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의 갈등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폭력이 심해졌다고 했다.


내 기억에 삼일은 아빠가 화를 냈고, 사일은 아빠 눈치를 보며 지냈던 것 같다. 아빠의 분노 이유는 종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모든 순간에 촉을 세우고 눈치를 봤다. 동전사건만 해도 그랬다. 내가 9살이었던 그날은 아빠한테 맞던 첫날이었다.


아빠의 100원짜리 5개 묶음을 내가 가진 500원짜리로 동전을 바꿔주다가 생긴 일이었다. 한참 동전 바꾸기를 하다가 문뜩 500원짜리로 갖고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동전 바꾸기를 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화를 냈다. 아빠는 내가 바꿔준 500원짜리를 던지듯 돌려줬고, 나는 동전을 주워 방으로 들어갔다. 아빠의 이유 모를 분노 방아쇠는 당겨졌고, 나를 쫓아와서 내 뺨을 후려쳤다. 바닥에는 동전이 떨어지고 그대로 나는 넘어져 오줌을 지렸다. 아빠는 내 머리채를 잡았고,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울며 나를 감싸 안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무엇이 아빠의 분노 방아쇠를 당겼는지 잘 모르겠다. 이제 와서 나에게 용서를 구한 들 용서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나 어릴 적 아빠라는 사람은 공포와 눈치의 대상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29살의 나에게 더 이상 아빠라는 사람은 아직도 공포와 눈치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이제는 꽤 선명한 그때의 기억을 꺼내어 덤덤하게 적을 수 있다.


그를 안 본 지 꽤 되었지만, 마지막으로 봤던 그의 모습은 꽤나 비굴했었다. 그가 담임목사로 있던 교회에 문제가 생겨 쫓겨날 위기에 처했고, 교회에 참석해 힘을 실어달라는 이유로 나를 찾아왔었다. 연락망을 모두 차단한 상태라 나와 연락이 닿질 않자 그가 나를 직접 밤늦은 시간에 찾아왔었다. 난 당연히 그럴 일 없다며 그를 돌려보냈고, 더 이상 찾아오고 연락하지 말라는 날선 절교 선언 문자를 보냈다. 후련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정리했다는 느낌만 들었다.


그를 부를 단어가 마땅히 없어 아빠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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