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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마야 Dec 30. 2022

비형과 삐형

'아빠'라는 소리 정리하기(2)

엄마, 아빠, 나, 남동생은 모두 B형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는 우리 집 혈액형을 2개로 나눴다. 

단순 혈액유형인 비형과, 잘 삐지고 화를 잘내며 폭력적인 유형의 삐형. 그때쯤 비의 나쁜남자 노래가 유행했었다. 엄마가 삐형을 운운할 때면 비지엠으로 나쁜남자 노래가 떠오르곤 했었다. 


비형과 삐형으로 우리 집 사람들의 혈액형이 나눠졌다. 비형에는 엄마와 나 그리고 남동생이 속했고, 삐형에는 아빠가 속했다. 가끔 나랑 남동생이 엄마말을 듣지 않을 때면 엄마는 우리 보고 삐형이라고 했던 적도 있지만. 공식적으로 삐형에는 아빠가 속했다. 혈액형 나누기에는 엄마의 상처와 분노가 있었고, 아빠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있었다. 


나는 엄마 아빠의 유전자와 혈액을 반반씩 갖고 태어났는데, 아빠랑 다른 혈액형을 갖게 됐다. 비형과 삐형은 엄마와 나랑 동생만 아는 얘기였지만, 아빠도 나랑 동생은 엄마 편이라는 걸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 편 가르기가 사건으로 드러나는 일이 생겼다. 


네 식구가 교회 끝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아빠는 외할아버지가 개척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하다가 갈등이 극에 달하고, 외할아버지의 소개로 경기도에 있는 교회 부목사로 갔다. 그 교회에서 부목사를 위한 거처를 마련해 줬는데, 그곳은 교회에서 100 발자국 정도 떨어진 컨테이너로 만든 주택이었다. 그래서 교회 끝나고 집으로 걸어가는 그 길은 매우 짧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엄마와 아빠는 다퉜다. 집 앞에 다 왔을 때쯤 아빠는 분노에 휩싸였고, 엄마는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또 폭력이 날까 싶어 집으로 들어가는 걸음을 멈췄다. 


엄마는 자기 바로 앞에 있던 남동생의 손목을 잡아 본인 쪽으로 끌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내가 엄마 아빠의 가운데 서 있게 됐다. 

양쪽에서 이리 오라고 했고, 나는 순간 갈팡질팡했다. 내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자 엄마는 "너 아빠 따라가면 맞을 거야 빨리 와!"라고 했고, 난 결국 엄마한테 달려갔다. 


그 길로 엄마는 나와 동생 손을 잡고 왔던 길을 되돌아 정신없이 뛰어갔다. 교회를 지나 길모퉁이 좁은 길을 지나 산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엄마와 우리 남매는 동산을 올랐고, 아빠는 어느샌가 보이지 않았다.

그날 나는 공식적으로 엄마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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