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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마야 Jan 09. 2023

날라리 크리스천

마음의 소리 정리하기(1)

어릴 적부터 교회는 나에게 너무 익숙했다.

교회 주보에 적힌 가족들 이름, 목사가운의 재질, 예배당 강단 뒤, 담임목사 설교 준비하는 방, 교회 식당 냉장고, 헌금주머니의 깊이 등 남들에게는 생소한 것들이 나에게는 익숙했고, 놀이터였다.


일요일이 되면, 깔끔하게 옷을 입고 엄마와 동생과 함께 교회에 갔다. 교회에 들어서면 교인들 대부분이 날 알아봤고 "네가 목사님 딸이구나, 이쁘게 생겼네 담임목사님 손녀딸이구나"라고 한 마디씩 하며 관심을 보였다.

아빠 교회든, 할아버지 교회든, 어딜 가나 사람들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어딜 가나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 계속해서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다녔다.


우리 가족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갈까 전전긍긍해하며 웃어 보이고, 내 일같이 고민 들어주며, 집에 방문해 안부를 묻곤 했다. 나는 교인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뚱뚱한 장로님, 화장품 냄새가 짙은 집사님, 눈매가 무섭게 생긴 권사님 그뿐이었다.


내 머리가 커갈수록 교회는 놀이터를 졸업했다. 교회는 가식적인 사람들로 난무하는 곳이었다.

교인들은 일주일 동안 저마다 속에 쌓인 분노와 스트레스를 교회에서 해결해 주기를, 공감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다 자신이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면, 교회에 나오지 않았고 이따금씩 교회에 행패를 부렸다. 그때마다 우리 가족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웃어주고 들어주었다. 나에게 보였던 교인들의 관심은 '너도 교회에 헌신하고 봉사하렴'과 같은 뜻이었다.


교인들은 실제로는 우리 가족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내는 헌금은 우리 가족에게 짐을 짊어도 괜찮다는 위안이었다. 얄궂게도 헌금은 우리 가족의 입과 주머니로 들어가지 않았고, 고스란히 교회운영 또는 기부로 돌아갔다. 돈을 많이 버는 목사는 도대체 어느 나라 이야기인지 궁금할 정도로 우리 가족은 궁핍했다. 교인들은 이번주 일요일에 목사 가족들이 교회에 나와 봉사를 하는지, 자신들에게 관심을 갖고 대우를 해주는지에만 관심 있었다.


배시간이 되면 가식은 배가 됐다. 아빠는 강단에 서서, 자신이 저질렀던 폭력과 학대는 쏙 뺀 채로 설교를 했다. 이따금씩 가족을 운운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말을 했다. 엄마는 아빠가 그럴 때마다 표정이 썩었고 가시를 세웠다. 교인들은 '아멘', '오 하나님', '주여'를 외치며 외계어 같은 말로 기도를 했다. 교회에 있는 엄마와 아빠가 싫었고, 교회의 모든 분위기가 울렁거렸다. 내가 교회에 갖고 있는 분노가 실은, 엄마가 갖고 있었던 분노였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렇게 교회 하나가 세워지기까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실속 없는 희생이 있었고, 엄마 아빠의 수많은 다툼과 폭력이 있었고, 목회자 자녀들의 깊은 상처가 있었다. 나는 외할머니집에 정착해 살며, 교회 이곳저곳을 배회하다가 지금은 가지 않는다. 개척교회 은퇴목사 외할아버지와 명예권사 외할머니에게는, 일요일에 교회가지 않는 것은 엄청난 죄악이다. 난 그 죄악을 매주 저지른다. 할머니, 할아버지 마음 편하시라고 일요일마다 교회 가는 척하고 집을 나와 카페에 간다던지 친구를 만난다던지 한 것이 십여 년이 됐다.  


교회를 다니지는 않지만 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다. 나는 월급을 받으면 십일조 대신, 이자 높은 적금에 돈을 저금한다. 크리스마스 때면 아기예수 탄생을 기뻐하는 교회에 가는 대신, 남자친구와 호캉스를 간다. 12월 31일에는 송구영신 예배에 참석하는 대신, 친구들과 펍에서 피자와 맥주를 먹으며 카운트다운을 한다. 하지만 나는 크리스천이다.


교회에 흘린 우리 가족의 눈물과 시간을 영원히 한 사람만은 기억해야 한다. 대대로 물려지는 목회자 자녀들의 깊은 상처를 영원히 한 사람만은 이해해줘야 한다. 미처 글로 남기지 못한 수많은 사건들을 한 사람만은 왜곡되지 않고 온전히 알아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은 살아계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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