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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마야 Jan 03. 2023

벌레가 등에 알을 깠다

'엄마'라는 소리 정리하기(3)

중고등학생 때 공부를 하지 않아서 공부할 것이 많은 어른이 된 나는, 남들보다 출발이 늦었다는 생각에 매사에 조급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하고 계속 달리기만 했다. 욕심과 인정욕구는 계속 치솟았고, 무리한 탓에 결국 대상포진에 걸렸다. 


난 최근에 박출장을 많이 다닌 탓에, 불청결한 곳에서 벼룩 같은 벌레에게 물린 줄만 알았다. 갈수록 가려움과 통증이 심해지더니 배와 등에 나선형으로 볼록볼록한 것들이 올라왔다. 이상한 벌레가 몸에 알을 낳은 건 아닌가 하는 이상한 생각과 함께, 점심시간 막간을 이용해 회사 근처 피부과에 갔다. 의사는 환부를 보자마자 대상포진이라고 했고, 주사 맞고 가라며 나를 주사방으로 안내했다. 주사방에 누웠고, 나는 멍했다.


'내가 힘들었다고? 내가 대상포진이라고? 내가 피로하긴 했지만 이게 대상포진 걸릴 만큼이었다고?' 


이내 의사가 들어왔고 '조금 아파요'라는 말과 함께 몸에 난 볼록볼록한 것들에 주사를 놓았다. 아프기도 했고, 내가 힘들었다는 사실에 뭔가 울컥했다. 그날로 회사에 일주일간 병가를 냈다. 이때는 몰랐다. 대상포진은 애피타이저였다는 걸. 


엄마는 평소 내가 비타민이나 영양제를 먹지 않아서 그런다고 가볍게 질책했다. 그리고 엄마가 맹신하고 애용하는 영양제를 나에게 주었다.


대상포진은 약을 먹고 휴식을 취하니 괜찮아졌다. 하지만 그 무렵 무터 내 속에 뭔가가 요동쳤다. 요동은 몇 달간 계속됐다. 밤마다 이유 모를 눈물이 났고, 초침 소리에도 긴장해 두근두근 거렸다. 그러다 용기 내어 집 근처에 우연히 본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여러 진료와 심층분석을 했고, 의사는 나에게 불안장애와 자기부정-타인부정 공포회피형 애착을 갖고 있다고 했다. 약물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했고, 그날부터 수개월간 약을 복용했다.


약값은 부담이 됐고, 언제까지나 약을 복용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자의로 약을 끊었다. 

이전처럼 이유 없이 우울해지지도 불안함에 심장이 요동치지도 않아 져서 괜찮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고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공황발작이 시작됐다.


물속에 들어간 것처럼 귀가 먹먹해졌고, 이명이 들렸다. 시야가 깜깜해지고 토할 것 같이 메슥거웠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뭔가 이상한 세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상태는 몇 분 간 지속됐다. 


엄마는 내가 정신과 이상한 약을 먹어서 그런 거라고 가볍게 질책했다. 그리고 또 영양제를 나에게 주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정신과에서는 공황발작이라는 말과 함께, 약을 자의로 끊으면 어쩌냐는 질책을 했고 함께 또다시 약을 지어줬다. 


'도대체 내가 왜 이래? 내가 공황발작을 한다고? 상처 많은 집안에서 자라긴 했지만 이게 이만큼이라고?'


도대체 이유를 몰랐다. 아빠의 폭력? 덤덤하게 말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데? 

나는 내 성격이 예민해서, 일욕심이 많아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회사에 너무 무리를 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퇴사를 하면 해방될 것이라 판단하고, 퇴사를 향해 달렸다.


퇴사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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