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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선 07화

뒷모습

by 한현수

그대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어요

뒷모습이 가장 아름다웠으므로

더는 감출 수 없고 꾸밀 수 없는 그대로의 모습

앞모습이 없는 것처럼

꽃피는 봄날에 뒷모습만 보여주는 나무처럼

그대가 바라보는 곳 함께 바라보고 있어요

그렇게 우리 숲이 되어가는 거죠


그대 뒷모습은 풀잎이슬 같아요

바람이 풀잎에 말을 거는 것 같아요

바람 속에서 회귀하는 봄날의 발자국소리가 들려오죠

거울처럼 들여다보죠, 그대 뒷모습

봄빛이 일어나는 자리,

난 기도하듯 봄빛에 두 눈을 묻죠


사랑은 봄빛처럼 느껴지죠

사랑하는 사람은 알죠, 봄의 깊이를

알에서 막 깨어난 새끼새들이 모여있는

그런 둥지로 보이죠, 그대 뒷모습

허공 한 채 업고 있는

어머니 등 닮았다고 부끄러워하지만


그대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어요

뒷모습이 가장 사랑스러웠으므로

사랑이 바람처럼 머물다 가는 자리,

사랑이 떠나간 듯 하지만

봄의 무게만큼 쌓여가는

어머니 등은 그 무게 때문에 굽은 거라고

봄날에 굽은 거라고





시집 <오래된 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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