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감정이라 말할 수 없는 사회
“요즘 애들은 너무 솔직하고 예민해서 조심스럽게 말할 수밖에 없어.”
“꼰대들은 공감 능력이 부족해.”
서로를 향한 말들이 점점 더 날카로워진다.
세대와 세대 사이에 어떤 벽이 놓인 듯하다.
단순히 나이 차이를 넘어서, ‘공감하는 방식’부터가 다르다.
기성세대는 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왔다.
시키면 일단 해야만 했던, 질문보단 순응이 미덕이던 시대에서 자라난 이들이다.
불만이 있어도 참고, 힘든 일도 묵묵히 버텼다.
반면, 젊은 세대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걸 배우며 자랐다.
속마음을 드러내는 연습도 함께 해 왔다. 그런데 막상 감정을 표현하면,
“예의가 없다.”
“그건 좀 지나친 거 아니야?”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
“그건 네 기분 탓이잖아.”
“그 정도로 예민하게 굴 필요 있니?”
“적당히 좀 해라.”
이런 반응이 돌아온다.
우리의 감정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고,
“좋아요” 버튼 하나로 평가되며, 콘텐츠처럼 소비되고 곧 잊혀진다.
짧은 릴스 영상처럼, 슬픔도 분노도 위로도 순식간에 스크롤돼 사라진다.
지금 우리는 공감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공감이 때로는 피곤하게 다가오는 시대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감정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이 에너지만 잡아먹는 일처럼 느껴지고,
내 감정을 드러내는 건 괜히 약점을 보이는 기분이 든다.
세대 갈등, 감정에 대한 회피, 공감의 단절.
이런 현상들은 단순히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화된 사회에서 우리는 쏟아지는 정보를
너무 빨리 흘려보내고 새로움만을 좇는다.
자연스럽게 자기 감정이나 타인의 마음에 귀 기울일 여유가 점점 사라진다.
점차 감정에 무뎌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예술의 힘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노래 한 곡, 한 편의 대사가 삭막해진 마음에 조용히 스며든다.
예술은 세대의 경계를 넘어서,
때론 제3자의 시선으로 내 마음과 상대의 자리를 바라보게 한다.
“나도 예전에 그랬지.”
“이제야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돼.”
공감은 누가 가르친다고 될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 아니다.
시간과 용기, 그리고 진심, 이해하려는 작은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예술은 아직도 그 진심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가장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방법이다.
“감정을 표현해도 괜찮다.”
이 너무도 당연한 말이 우리 사회에서도 정말로 당연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