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르고 흔들리며, 천천히 자라나는 나
처음 누군가의 마음을 품게 된 날,
나는 그 사람이 나를 기대도 되는 존재로 여겨주길 바랐다.
나의 손길과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하루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들 수 있기를.
그래서 더 자주 안았고, 더 자주 기다렸다.
그러다 문득,
내 마음이 위로가 아닌 무게가 되어 돌아올 때가 있었다.
지쳐 있는 너를 다독이다가 대상이 내가 되었을 때
마치 화살처럼 날카롭게 내게 꽂혔다.
순간 나는,
내가 괜히 너의 감정을 받아준 걸까,
내 마음이 너의 분노를 위한 무대였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휘청였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워졌다.
내 마음 하나 내보이는 게,
너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말 한마디 꺼내기 전에 세 번은 삼키고,
기꺼이 참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사랑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그건 나 자신을 점점 소모해가는 과정이었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낮과 밤이 뒤섞인 교대 근무,
몸이 기억하기도 전에 바뀌는 리듬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책임지는 삶이란 걸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부모님을 생각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내가 잘 살아야지”가 아니라
“함께 잘 살아야지”라는 마음으로 산다.
그렇게 나는,
작은 새싹에서 넓은 잎을 꿈꾸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사랑이 가르쳐준 감정의 결,
일이 가르쳐준 책임의 무게,
가정이 가르쳐준 존재의 뿌리.
그 모든 것이 내 안에 스며들어
나를 조금 더 큰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때때로 감정의 그늘에 머무는 시간이 있다.
이해받지 못한 채 혼자 엎드려 울던 순간도 있었다.
그런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키웠다.
그늘이 있다는 건
내 마음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잎이 넓어졌다는 건
이제 누군가를, 또 나 자신을
더 깊고 더 따뜻하게 감쌀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그늘을 견디며 잎을 넓히는 중이다.
그러니까,
이 사랑도 이 성장도
결국 나를 피워내는 과정이었단 걸
이제는 천천히 믿어보기로 한다.
“ 나는 오늘도, 내 안의 잎이 피어나는 소리를 듣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