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생일을 음력으로 한다. 지금은 양력 생일로 하지만 결혼 전까지는 집에서 늘 음력 생일을 지냈다. 내 생일은 음력 4월 말이라 보통 양력으로는 5월 말에서 6월 초다.
그때 나는 여덟 살이었고, 소박한 한옥집에 살았고, 우리 집은 세 방 정도 월세를 놓고 있었다. 생일날 아침부터 나는 왠지 모르게 들떠있었다. 처음으로 친구들을 초대해서 생일잔치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중 한 집에 살던 동갑내기 친구에게 내 생일이라고 오늘 저녁에 생일잔치를 할 거라고 얘기했다. 친구는 엄마에게 얘기해서 머리방울을 선물로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경상도에 살았던 우리는 예쁜 구슬이나 꽃이 달린 머리끈을 머리방울이라고 불렀다. 그때 당시, 생일이면 보통은 공책이나 연필을 선물했다. 포장한 모양이 직사각형이면 공책이라는 게 금방 들통났다. 그런데 친구가 예쁜 머리방울을 선물해 준다니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들떠있을 만했다. 낮 동안 나는 동네 친한 친구 몇 명에게도 내 생일이라는 얘기를 하고 생일잔치에 오라고 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다.
늘 단발머리였던 한 친구는 대문을 열고 들어오며, 레이스 달린 흰 양말을 뭉쳐서 선물로 주었다. 본인이 신던 걸 가지고 온 것 같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고,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머리방울을 선물해 주기로 한 친구는 쿨피스를 선물해 주었다. 사실 머리방울을 제일 기대했다. 조금 실망했지만, 속으로 '친구한테 머리방울을 선물로 받긴 힘들지.' 하면서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주희라는 친구는 선물을 준비 못했다며 미안해하는 눈치로 쭈뼛쭈뼛 우리 집 대문을 들어왔다. 나는 마음의 선물이 더 중요하다는 의례적인 말을 해주며 친구 마음을 편히 해주려 했다. 선물보다 내가 주인공이라는 설렘이 더 컸을까 자꾸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삼삼오오 친구들이 모이고, 초여름, 우리 집 대청마루에서 생일잔치가 시작됐다. 엄마, 아빠, 할머니, 내 동생, 친구들 모두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고, 난 촛불을 껐고 모두 박수를 치고 맛있는 음식을 다 함께 먹었다. 케이크를 잘라 친구들도 먹고 같이 사는 한 지붕 세 가족들에게도 나누어주었다. 그중 한 방에 살던 몇 살 많던 오빠는 부끄러운지 생일잔치에 내려오지는 못하고 아마도 오빠 어머니가 사주셨을 초코파이 한 상자를 선물이라며 다락방에서 건네주었다. 키 작던 내가 팔을 뻗어 그 초코파이 상자를 받는데, 그 순간 따뜻하고 행복한 무언가가 나를 감싸는 기분을 느꼈던 것이 아직도 뭉클하게 기억된다. 그때 나는 쿨피스도 받고, 양말도 받고, 공책, 연필도 받고, 초코파이 한 상자까지... 그렇게 많은 이에게 생일 선물을 받은 게 처음이었다. 해 질 무렵 시작된 어린 날 나의 생일잔치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초여름 저녁에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으로 그려져 있다.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 즈음 끝이 나서 친구들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난 늘 자던 할머니 방에서 잤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 창호지 발린 문을 삐그덕 열고 나왔다.
방문 앞 툇마루에 새 공책 하나가 펼쳐져 있었다. 펼쳐진 공책 표지 뒷면에 크레파스로 쓴 편지가 적혀있었다.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주희가'
가장 행복했던 나의 여덟 살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