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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아 Feb 24. 2023

섭식장애는 마음의 병이란 말이에요

15. 나를 좀 봐주세요. 저 여기에 있어요!

엑스레이 촬영 결과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날 밤, 엄마와 다인실 병동을 빠져나와 병원 1층으로 향했다. 불 꺼진 원무과 의자에 앉아 한참 퇴원에 대해 실랑이를 벌였다.

엄마는 추석 연휴와 주말이 지나고 정신의학과 교수님이 회진을 오실 때까지 기다려보자 하셨고

나는 당장 내일 아침이 오면 퇴원 수속을 밟고 집으로 가 통원 치료를 받겠다 주장했다.

그때는 오만하게도 더 이상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심장내과 교수님이 회진을 오셨고

나는 퇴원 의사를 밝혔다.

다음 주에 정신의학과 교수님을 뵙고 결정하기를 권하셨지만 나의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입원 3일 차에 퇴원 수속을 마쳤다.

그 후로 거식증 회복 과정에서 시작된 폭식증 증상으로 일주일에 한 번 모즐리 상담치료와 백병원 이외에도 섭식장애로 유명한 정신의학과 진료를 병행했지만 그것 또한 세 달이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당시 내원한 병원들과 상담 센터에서는 거식, 폭식 증상과 몸무게 변화에만 중점을 두고 나의 상태를 파악하려 했다. 또한 수많은 섭식장애 환자 사례를 봐왔지만 이렇게까지 짧은 기간 심한 수치상 그래프 변화는 처음이라며 어려운 상황이라는 진단을 내리며 난감한 얼굴로 정신과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적으로 들어왔다.




그해 12월, 세 달 만에 20킬로 가까이 체중이 늘어있었다. 그 사이 부모님은 나를 연세 세브란스 병원으로 데려가 심장내과와 내분비내과 등 여러 방면으로 검사와 진료를 받게 해 망가진 몸 상태가 회복되는 것을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몸무게가 늘고 간수치와 심장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나아지는 게 아니었다.


여전히 섭식에 있어 강한 불안함을 느꼈다.
더불어 쉽게 멈춰지지 않는 음식에 대한 갈망이 두려웠다. 곰곰이 되돌아보았다.
어릴 적부터 불안했다. 항상 외로웠다.

언니와 부모님이 싸울 때면 무섭고 겁이 났다.

늘 언니의 기분에 맞춰 모든 게 돌아갔고,

나는 가족들에게 감정 쓰레기통이자 그저

말 잘 듣는 자랑거리 같았다.

언니가 나를 어두운 화장실과 추운 베란다에 가두어도 아무 말하지 않는 무력한 부모에게 화가 났다.

나도 여기에 있다고,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럴 때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곁에서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기에

그저 참는 게 전부였다.
혼자 울거나 책을 읽거나 먹었다.


그리고 작년 여름부터 다이어트라는 명목하에 나를 굶겼다. 죽어라 운동을 하고 밤새워 공부를 했다.

그 속의 불안과 우울을 기대어 깊이 묻은 채 애써 가두었다. 그렇게 몸무게 앞자리 2라는 숫자를 찍고 내 몸은 바닥을 쳤다.
심장이 잘 뛰지 않았다.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지금은 세 달 만에 20킬로 가까이 몸무게를 회복했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왜 이렇게까지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을까..




섭식장애라는 병은 진짜 나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나 스스로와 끊임없이 싸우는 병이라 생각했다.
결핍의 이유를 내게서 찾고 또 찾았다. 공부 잘하고 착한 딸이 되어도 사랑받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 비슷한 방식을 가졌었다. 좋은 사람이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니 날씬하고 완벽하지 않아 사랑받지 못하는 나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한 번도 누군가에게 제대로 내 마음을, 오래 묶은 쓰레기 같은 감정들을 꺼내어 본 적이 없어서 스스로 더욱 혹독해지고 완벽함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수많은 강박으로 남았다.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모순이다.
이제 나를 용서하고, 나와 화해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사랑을 갈구하지 말자.
'나'로써 단단히 바로 서자."

재섭식을 시작하고 여전히 하루에도 거식과 폭식을 오가며 (결국 둘은 같은 말이다) 나 자신에게 되뇌었다. 그럼에도 불안한 매일을 보내며 가만히 있는 시간을 견딜 수가 없어 끊임없이 먹거나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아직 나는 음식이 두렵고 무섭다.

그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고 여전히 거대하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 병은 몸무게 회복이 전부가 아님을 다시금 깨달았다.




나를 괴롭히는 것만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저 버티는 게 이기는 것이라 여겼다. 모두가 그런 줄 알았다. 어쩌면 나만은 그래야 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의 아픔에 공감했다. 함께 슬퍼하고 아파했다.

나의 상처는 외면했다. 마주하기 싫었다.

누군가 아프고 슬픈 나도 발견해 주기를 바랐다.

아무리 발버둥 치고 나를 몰아붙여도 결국 채워지는 건 없었다.


마음의 밑바닥 어딘가 나를 이 병으로 몰아넣은 다른 무언가가 분명 존재했다.
그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아팠고 외면하고 싶었다.

나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연세 세브란스 병원에 처음 간 날, 역시나 체중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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