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무월경 2년째이지만 나도 여자랍니다
호텔에 단기렌트 할 당시 근처 가장 큰 교회를 찾았다. 초등학생 때까지 부모님과 다녔던 작은 교회 이후 오랜만이었다.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대학부에서 처음 그를 봤을 때 자연스럽게 눈길이 머물렀다. 예배가 끝나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과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상대의 눈을 보며 이야기하기는 나의 태도를 그는 피하지 않고 따뜻하게 받아주었다.
그때 왠지 이 사람과 오래 보게 될 거라 직감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대학부 예배를 빠지게 된 내게 안부 연락을 했고, 당시 나는 퇴원 후 하루하루 심각해지는 폭식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몇 주 만에 다시 참석한 예배가 끝난 후 그를 포함해 친해진 사람들과 소규모 모임을 만들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나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누군가에게 말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들은 서툴지만 집중하는 눈빛으로 경청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흘렀다.
더 깊은 사정은 차마 말하지 못하고 거식증과 폭식증이 연달아 와 입원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만 설명했을 뿐이었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이 생경했다.
그동안 꽉 막혀있던 가슴에 손가락만 한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손가락 하나만큼 작은 그 사이로 바람이 숭숭 통하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내게 자주 연락을 해왔다.
밥은 잘 챙겨 먹었는지, 아픈 곳은 괜찮은지 물었다.
어느 날엔가 또다시 멈출 수 없는 허기에 나를 내려놓고 음식에만 매달렸다.
점점 폭식의 강도와 빈도는 늘어났다. 그는 모임에 나오지 못한 나를 보러 한달음에 달려왔다.
나중에 그에게 듣기를 우리 집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지나가는 말로 들었던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무작정 와 연락이 닿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뒤늦게 그의 연락을 확인한 나는 그에게 온 전화를 받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그는 역 앞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가 다시 발길을 돌려 우리 집 근처로 왔다.
그날 저녁 작은 카페에서 그와 나는 오랫동안 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대학교 졸업 후 학사장교 시험을 준비 중이었기에 그날 이후 공부가 끝나면 매일같이 나를 찾아왔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다이어트와 학업에만 몰두했던 내게 이성과 시간을 보내는 건 그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서툴렀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에게는 뭐든 숨기지 않고 말하게 되었다.
그때는 그도 나에게 자신의 힘듦을 이야기했고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감싸주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어린 나는
어떤 모습이든 사랑할 수 있다는 그의 사랑이 너무나 눈부셔 보였다. 이토록 삶이 모두 무너지며 찾아 헤매온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불안하고 두려웠다.
사랑을 믿지 않으면서 사랑을 꿈꿔왔다.
늘 한 발은 웅덩이 밖에 내놓고 다른 한쪽만 위태롭게 걸친 채로 사람을 만났다.
고인 빗물에 온몸을 뒤덮이지 않으려는 나만의 발버둥이었음을 지금은 인정한다.
다시는 사람에게, 아니 사랑에게 내 전부를 거는 일은 없어야 했다.
내가 나를 버리고 아프게 하는 순간을 마주한다면
이번에는 죽어라 피하고 도망쳐버려야지, 다짐했다.
더럽고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
나를 숨기는 법에 익숙했다.
세상에 나와 부모를 통해 배운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살이 찌고 있음에도 무월경은 나아지지 않았다. 벌써 2년째였다.
연세 세브란스 병원에서 받은 산부인과 검사 결과 여성호르몬 수치 또한 처참했다.
폐경기 여성보다도 낮은 상태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조금은 겁이 났던 거 같다.
일단은 억지로라도 무너진 생체 리듬을 돌리기 위해 호르몬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 뒤로 감정은 더욱 요동쳤고 거식과 폭식은 중간을 모르고 극과 극으로 날뛰었다.
배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몰려오는 밤이었다.
이제는 정말 먹고 싶어서 음식을 먹는 건지, 그저 '먹고'만 싶은 것인지 몰랐다.
오히려 폭식 후에 정신과 감정은 어느 때보다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그를 그냥 내 곁에 붙잡아두고 싶은 건지,
의지하고 싶은 건지, 그저 사랑받고 싶은 건지,
내가 그를 정말 좋아하는 게 맞는지 헷갈렸다.
사실 두려웠다. 정말 놓지 못하게 될 만큼 이 사람이 내 안에서 커져버릴까.
이렇게 매일 나와의 싸움을 반복하는 것에 지쳐갔다. 그 또한 이런 내 모습에 지쳐버리고 더는 내게 달려와주지 못하게 될 때 무너질지도 모를 나의 상처가 먼저였다. 제대로 사랑받아본 적이 없어서 이런 두려움에 지레짐작 주춤하는 스스로가 싫었다.
섭식장애를 기점으로 더는 이전의 내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20년 동안 내가 아는 나는 착하고 어른스럽고 잘 참으며 감성적이나 항상 완벽하려 노력했다.
그 이면에는 늘 방 한구석에서 슬퍼하고, 자책하고,
극단적인 생각을 하며 매일 조용히 장문의 유서를 쓰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무엇이 진짜 내 모습일까. 불면의 밤을 보냈다.
어쩌면 가족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던 내게 가장 쉽게 행복을 주었던 건 스스로를 잘 통제하고 있다는 안도였을지 모른다. 나는 완벽하다는 것,
그래서 다른 이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다는 기대만이 내게 위로가 되었다.
먹는 것을 통제하고 힘들게 운동을 하고
그럼에도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내가,
말라가는 내가 나는 좋았다. 모든 게 완벽하다고 느낀 순간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부터 한없이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나를 발견했다.
부모에게도 그에게도 변함없는 사랑을 원했다.
그 마음이 커질수록 또다시 나 자신을 억눌렀다.
실은 그들에게 기대어서라도 상처와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어떻게든 억압돼 있던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