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29kg 어른아이에게 닥친 폭식증
마침내 체중계 위에서 29킬로라는 숫자를 보았다.
엄마의 집밥을 치료식으로 먹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렇지만 다만 시작, 했을 뿐 분명 마른 몸을 잃기 싫었던 고군분투이자 마지막 발악이었다.
밥 양도 물을 반쯤 섞은 30그램도 되지 않는 터무니없는 양의 그저 이름뿐인 치료였다.
지금에야 웃으며 말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른 숟가락 한 수저도 되지 않는 양이 어찌나 두렵던지..
한참 거식증이라는 늪에 빠져있을 때 마치 3살짜리 어린아이 같던 나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어쩌면 그건 고작 30kg 무게 안에 쪼그라든 장기와 뇌를 가진 또 다른 '나'이다.
나는 이 점을 분명히 인지하며 그것이 마음의 병에 잠식당했던 아픈 '나'였음을 인정한다.
슬프지만 명백한 사실이므로 결코 부정할 수도, 지울 수도 없는 과거이다.
튀어나올듯한 갈비뼈와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 깡마른 몸매. 온종일 어린아이처럼 징징대고 두서없는 어리광을 부리며 종종 머리가 멍해져 어떤 일에 제대로 몰두할 수도, 집중할 수도 없어 한없이 울고 싶어지곤 했다. 모든 게 원래의 나와 반대였다.
때론 정말 흔히 말하는 돌아이 또는 미친 사람처럼 무언가에 빠져 그것에만 매달리며, 누가 스치고 지나만 가도 살이 패이는 고통에 더없이 예민해졌다.
미친 듯이 물건을 사대고, 무언가에 돈을 쓰고, 먹을 것에 무섭도록 집착하고 있었다.
하나의 감정에 빠지면 정신을 못 차리고 홀려버리고 먹지도 쓰지도 않을 과자와 물건을 산더미처럼 쌓아두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상태의 강박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
그때는 정말 그게 나였다.
몸무게 앞자리에 2라는 숫자를 보니 나조차도 내가 무서워졌다. 소파에 앉아있어도 숨이 찼다.
때때로 정신이 아득해지곤 했다.
부모님과 추석 연휴가 지나면 백병원에 입원하기로 이야기를 마쳤다.
그러나 추석 연휴가 시작되고 폭식이 시작되었다. 올 것이 왔다 생각했다.
음식을 거의 먹지 않고 굶다시피 체중을 줄이는 절제형 거식증에 폭식증은 당연히 뒤따라오는 것이었다. 집에 있는 음식들을 하나하나 맛보고 부모님과 함께 시장에 나가 명절음식을 사 먹는 것으로 시작된 폭식은 1년이란 시간 동안 억눌러왔던 거대한 식욕을 드러내 내 안에서 폭발시켰다.
밥을 먹고도 과자 여섯 봉지를 마구 씹어 해치웠다. 입천장이 까지고 맛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 작아질 대로 작아진 위는 갑작스레 들어온 방대한 양의 음식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배가 찢어질 듯 아파왔지만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먹어도 먹어도 끝없이 무언가 먹고 싶었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배부름과 자극적인 음식들에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이 허기가 두려웠다.
그날 저녁, 아픈 위를 부여잡고 괴롭게 울면서 음식을 집어넣는 나를 보곤 엄마가 119를 불렀다.
곧 아파트 단지 안에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구급대원들은 핏기 없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나의 모습을 보고 별다른 말없이 나를 들것에 옮겨 구급차에 실었다. 어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사실 그 순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잠시라도 마음을 놓으면 바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구급대원이 누워있는 나의 앙상한 몸을 보고
함께 탄 엄마에게 어느 병원에 무슨 과로 가야 하는지 물었다.
연휴가 지나면 입원하기로 했던 백병원에 추석이 끝나기도 전에 입원을 했다.
백병원에는 따로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이 없었기에 심장내과 병동으로 배정받았다.
6인 병실에는 나를 제외한 환자들 모두 나이 든 노인분들이셨다.
곧바로 커다란 통에 든 노란 영양정맥주사 링거를 팔에 꽂은 채 대소변 횟수를 적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내게는 보호자가 한시도 떨어지면 안 된다는 주의가 떨어졌다. 매 끼니 죽으로 시작해 점차 양을 늘려가는 삼시 세끼 병원밥과 엔커버액, 정신과 약이 함께 나왔다.
문득 억울해졌다. 이렇게 무력하게
수액으로 체중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먹고 싶은 욕구를 참고 또 참으며 쌓아온 노력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어차피 찌워야 할 살이라면 맛있는 음식으로 채우고 싶었다. 그 순간 절제의 끈이 툭, 하고 끊겼다.
삼시 세끼 병원밥을 싹싹 비우고 엄마에게 병원 앞 편의점에서 수많은 간식들을 사 와달라 부탁했다.
초콜릿 과자, 빵 같은 자극적이게 달고 짠 음식들만 미치게 먹고 싶었다. 오후에는 배달 어플을 다운로드해 병실 앞으로 떡볶이를 배달시켜 먹었다.
그러고는 수액과 음식으로 가득 차 무거운 몸을 이끌고 병원 복도로 나가 간호사분에게 소화제를 처방받아왔다.
모두 잠든 새벽, 불 꺼진 환자 침대에 커튼을 치고
위가 아파 먹지 못하고 남겨둔 병원 저녁밥을 다시 꺼내 먹었다.
새벽에 화장실 거울에서 마주한 내 얼굴과 온몸은 퉁퉁 부어있었다. 훤히 드러난 갈비뼈와 대비되게 배와 다리는 붓기로 임산부와 다름없었다.
입가엔 하루동안 먹은 흔적들로 가득했다.
환자복엔 온갖 음식물이 튄 자국과 손등엔 이전에 전투를 치르듯 먹은 떡볶이 국물이 남아있었다.
오늘, 아니 어제의 나는 무려 4끼의 식사와
크림빵 한 봉지, 과자 세 봉지, 아이스크림 한 통을 먹어치웠다. 마치 걸신이 들린 사람처럼 온몸에서 땀 냄새와 온갖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같은 병동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은 한마디로
“미친년”이었다.
새벽 내내 열이 38도까지 올라 피검사를 하고 몇 번이나 체온을 반복해서 쟀다.
여러 검사 후 몇 배로 올라있던 간수치와 느린 심장박동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어 입원 하루 만에 정맥주사를 제거했다.
먹기만 했을 뿐인데, 몸도 마음도 마구 날뛰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정말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다음날 나는 바로 퇴원하겠다 고집을 부렸다.
아침이 되자 갑자기 겁이 났다. 매일 아침마다 체중을 확인하던 체중계도 없었고 추석 연휴라 병원에는 의사 선생님들도 몇 분 계시지 않았기에 하루가 지날수록 지금 이 답 없는 심각한 폭식증에 몸무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만 같았다.
불안이 다시 눈을 뜨자 한시도 기다리기 힘들었다.
병실 복도로 나가 간호사님들이 바쁘신 틈을 타 체중계에 올라갔다. 눈치를 보며 체중을 확인하던
나는 다리의 부종으로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우당탕, 넘어지면서 옆에 있던 트롤리를 붙잡아 함께 쓰러졌다. 커다란 굉음이 복도를 메웠다.
간호사분들이 모두 달려왔다. 나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옆에 비치된 휠체어에 앉혔다.
휠체어에 탄 채로 엄마와 함께 엑스레이실로 향했다. 혹시라도 부러지거나 금 간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료진분들의 우려였다. 자빠지기 전 확인한 몸무게는 하루 만에 3킬로가 늘어나있었다.
아마 그중의 반은 붓기였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엑스레이실에 들어가 촬영을 하면서도 체중에 대한 강박으로 가득했다.
도무지 아프고 마른 어른아이같은 나를 놓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