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본격적으로 성경말씀에 나오는 몇몇 부부들의 만남을 비추어 보자!
-이삭과 리브가의 경우를 한마디로 요약해 보면,
아버지 아브라함을 통해 만남추진이 시작됐고
아브라함의 종이 주님께 간구하며 찾아갔고 주님이 기도를 들어주셔서
이삭은 집에 가만히 있으면서도 리브가를 만날 수 있었다.
완전 꿀이다!
여기서 첫 시작이 중요하다.
아브라함이 말한 내용을 보면,
창세기 24장 3절부터 4절까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기를 가나안 족속의 딸들을 구하지 말고 내 고향 친척에게로 가서 이삭의 아내를 구해오너라'라고 한다.
아브라함 마음속에 이미 '며느리에 대한 기준'이 깔려있었다.
아무래도 당시 이방인들은 우상들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기준으로 이삭의 배우자를 생각했고 그게 말로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종이 주님께 간구하며 행동으로 움직였더니 실제 아브라함의 친척의 딸을 며느리로 맞이하게 되었다.
와우~
이것을 현대식으로 풀자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님이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자녀의 배우자를 소망하고
실제 소개팅이나 선을 주선해서 크리스천 집안과 결혼한다는 뜻 같다.
-야곱의 상황에서는 라헬만 두고 봤을 때,
야곱이 형 에서로부터 도망치는 상황이 있었다.
야곱 엄마인 리브가가 에서로부터 피해있으라고 결혼핑계로 야곱을 삼촌네로 보냈는데,
거기서 생각지도 못하게 삼촌의 둘째 딸 라헬에게 첫눈에 반했던 것이었다.
이것은 주님이 일하셨을까? 주님이 붙여주신 걸까?
만약 삼촌네로 도망쳤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야곱이 버틸 수 있었을까?
‘7년을 며칠 지나는 것처럼 지냈다’고 창세기 29장 20절에 나와 있다.
어린 시절 집에서 책만 읽으며 자라 바깥일은 잘 모르는 야곱에게 '갑자기 외딴곳에 내동댕이 쳐져서 버팀목 하나 없이 죽어라 일만 하라'라고 했다면 과연 했을까 의문이 든다.
에서를 피해 도망쳤던 것처럼 2차로 삼촌을 피해 도망쳤을 것 같다.
야곱이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인지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도와주기 위해 라헬을 만나게 하신 것이 아닐까 싶다.
첫사랑이자 마지막사랑으로 야곱이 삼촌네서 버티게끔 인도해 주신 것이 아닐까 싶기도!
왜 꼭 자신을 속여가며 일만 부려먹는 삼촌네서 사랑 하나로 버텨야 하냐고 물어보신다면,
그 고난의 시간이 야곱의 죄성을 연단시키고 성장시키기에 족하므로 그 시간들을 허락하신 것이 아닐까 라는 답을 조심스럽게 하고 싶다.
이 야곱과 라헬의 만남을 현대식으로 풀이하자면.
남자가 힘들어진 상황 때문에 집에서 뛰쳐나왔지만 고단해진 심신으로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을 때,
드라마처럼 첫눈에 반하는 여자를 만나 살아갈 힘을 얻는 그런 삶의 모습이라 생각이 된다.
-요셉의 경우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 여인과 결혼했다.
물론 요셉의 아내가 나중에 하나님을 믿기로 변화했을지 아이들만 편입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단은 이 결혼 또한 주님의 계획 안에 있었을까 궁금하다.
어린 시절을 타국에서 힘겹게 자라 총리가 된 요셉은 이집트왕의 주선으로 결혼하게 된다.
그 상대가 요셉의 마음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요셉은 그 결혼에 책임을 졌고 국정도 잘 이끌어나갔다.
뭐 그동안 말씀을 통한 요셉의 성품을 보면
권력욕심이 있어서 억지로 결혼한 게 아니라 '마침 결혼할 때인데 잘 만났구나'라고 여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여기서 요셉을 살뜰하게 돌보시던 하나님께서 요셉과 이방여인과의 결혼을 허락하신 이유가 궁금하다.
아무래도 그 이방여인도 어쨌든 하나님께서 빚으신 사람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으니 또한 요셉의 성품과 잘 맞아서 이집트 왕을 통해 인도하신 게 아닐까 싶다.
이 경우는,
혼자 덩그러니 외롭게 지내는 찰나에 나에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의 주선에 배우자를 만나는 경우 같다.
-룻과 보아스의 경우는,
(일단 룻이 돌싱인 걸 잠시 내려놓고 보자면)
룻이 이삭을 주울 때 보아스의 밭인지 모르고 주웠다.
먹고살려고 한 행동일 뿐인데 미래 배우자의 일터였다니!
만날라고 하니까 그렇게 남편 될 사람의 일터에서 만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보아스도 룻에게 관심이 있었던지 하인들에게 명령해서 줍게 내버려 두라고 한다.
그 당시 미망인이 된 룻은 가문의 법도상 책임질 남자가 있었다.
그래서 보아스는 자기 차례가 아니니 그 남자에게 룻을 책임질 거냐는 의향을 물어보면서도,
룻기 4장 4절에 '자네가 원하지 않는 다면 내게 말해주게. 내가 알아서 하겠네. 자네 다음에 나일세.'라고 피력한다.
이 정도면 자신이 룻을 좋아하고 룻과 결혼하고 싶다고 강조한 게 아닐까 싶다.
이 말씀으로 비추어보면,
직장에서 서로 만나는 경우인데
남자가 여자를 도와주고 보호하는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성경에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혼인관계 말씀들은 예수님의 계보와 연관이 돼서 언급된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성경말씀에 나오는 부부들의 만남을 봐도
정말 우연인 것 같고 아무 뜻이 없는 것 같아도
'주님이 허락하시고 인도하시는 부부가 만나고 합쳐지는 건 다 주님의 뜻 가운데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부모를 통해서, 자신의 고난의 상황을 통해서,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가까운 지인의 주선으로, 일터에서 우연히.
이렇게 하나님은 유동적으로 일하신다.
처음부터 '너는 쟤, 얘는 걔' 이렇게 딱 정하는 인연도 있을 테지만,
또 살아가면서 '음~ 이 친구는 저 친구와 잘 어울리겠는데? 신앙의 정도도 비슷하고 서로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아~'하시면서 'ing'로 '미리' 일하신다는 생각이 스쳐가듯 들었다.
'아니! 저기 잠깐만요! 성경에서는 몇 가지의 경우만 있고 현실은 엄청 많은데, 어떻게 다 적용해요? 성경은 성경일 뿐이잖아요!'
라고 할 수 있다.
맞다!
그래서 다음 편에는 내 지인들을 통한 예시들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