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다 다른 이유가 있겠지, 아마도...

원래 공부라는 게, 몰라도 사는 데 전혀 지장 없는 게 대부분이라서...

by 철없는박영감
어쩌면 그 당시 도파민을 책임졌던 책이었을지도, 지적인 도파민...?


<러셀 서양철학사>는 철학계의 Short 같았다. 생각 없이 휘리릭 휘리릭 넘기다가 흥미로운 분야나 코드가 맞는 콘텐츠다 싶으면, 짧고 굵게 편집된 요점만 보고 '음...' 하고는 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게 하는 'Shorts'.


그 속에는, 전에 몰랐던,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를(이것이 철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이 아닐까?) 흐릿한 사실도 있고, '이런 것 아닐까?' 하는 의혹제기를 빙자한 추측성 선동, 즉 가짜뉴스 같은 가설도 있다. 중간중간 죄를 사해준다는 면죄부 광고를 끼어넣기도 하고, 그대로 따라 하면 생활이 윤택해진다는 '꿀팁 대방출'같은 수학, 기하학, 자연과학도 있다.


게다가 할 거 다 하면서 부자 되는 법, 먹어서 살 빼는 법, 운동 안 하고 몸짱 되는 법 같은 유사의학 생활정보 같은 행복한 인간 되는 법을 가르치는 윤리학도 있고, 친구 사귀는 법, 가까이 두면 안 되는... 혹은 가까이 둬야 하는 사람 유형, 인간관계 잘하는 법, 무례한 사람 대처법 등 한 길 사람 속을 알 수 있다고 떠드는 처세술까지... 그래서 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터득할 수 있는 '현자의 길'을 가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한참 뒤에 깨닫게 된다. 그 안에 '나'는 없다는 것을... 그저 좇기만 하다 보면 어느새 꿈과 현실의 구분이 안되기 시작하고,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호접몽, 물아일체, 나비의 꿈, 인생무상까지 겪으며 허무주의로 빠진다. 이 정도 상태까지 오면, 모든 것이 귀찮고 의미 없어진다. 그리고 동굴로, 동굴로 숨고만 싶어진다. 그렇게 칩거, 은둔, 고립을 자처하다가 더 심해지면 세상의 종말을 바라기도 하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고, 정신적인 질병을 얻기도 한다.


그러다가 일부는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고, 일부는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내지만 자신만만하게 살아온 지난날의 모습이 너무 부끄럽고, 어리석게 느껴져 몸 둘 바를 모르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가 바로 철학을 공부할 타이밍이라고 감히 추천한다. 그래서 버티지 못한 이들에게... 앞 날이 막막하고 길이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싶은 기로에 서 있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철학 공부 이렇게 한 번 해보자!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더욱 선명히 깨닫게 된다. 결국엔 서양철학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 '너 자신을 알라'로 되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보다 덜 막막하고 답답할 것이다. 선대 철학자들의 시행착오를 통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그리고 어렴풋이 앞으로의 길을 예측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철학은 단지 지식을 쌓거나 그것을 자랑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과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더욱 풍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한 도구다. 소크라테스가 질문했던 것처럼,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들은 철학 공부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이런 질문은 단순히 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성장하게 만든다.


철학을 공부하며 허무 속으로 빠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철학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타인을 이해하는 여정이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넓히고, 우리의 존재를 더 의미 있게 만드는 과정이다. 단지 토론에서 상대를 이기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다. 타인과 더 나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함이다. 상대의 말문이 막히게 하지 말고, 더 잘 알아듣는데 철학을 이용해 보면 어떨까?


미처 논하지 못한, 책 속의 몇 구절 남기고 끝내겠습니다.


1. <러셀 서양철학사>, 제3권 근현대 철학, 6. 과학의 발전 839p


「갈릴레오 (Galileo Galilei, 1564~1642)는 근대 과학을 정초 한 과학자 가운데 뉴턴을 제외하고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힌다. 그는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가 세상을 떠난 날에 태어나서 뉴턴이 태어나던 해에 죽었다. 나는 이렇게 흥미로운 사실을 아직도 윤회 사상을 믿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말해 주고 싶다. 그는 천문학자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지만, 역학의 창시자로서 더 중요하다. (중략)


이번 장의 남은 지면에서는 17세기 과학에서 도출된 철학적 믿음과 현대 과학이 어떤 점에서 뉴턴의 과학과 다른지 간략히 논의할 생각이다. (중략)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47개나 55개의 부동(不動)하는 원동자는 신성한 정령이며, 하늘 위의 모든 운동의 궁극 원천이다. 생명 없는 물체는 무엇이든 그대로 놓아두면 곧 움직이지 않게 되므로, 운동을 멈추지 않으려면 영혼이 끊임없이 질료에 작용해야 하는 셈이다.


이러한 모든 생각은 운동의 제1법칙*으로 바뀌었다. 생명 없는 질료는 한 번 운동하기 시작하면, 외부 원인이 작용하여 정지되지 않는다면 영원히 운동을 계속할 것이다. (중략) 뉴턴에 따르면 행성들은 애초에 신의 손에서 던져졌지만, 신이 중력 법칙에 따르도록 명한 다음에 각 행성은 더는 신이 간섭하지 않아도 자연법칙에 따라 스스로 운동한다. 지금 영향을 미치는 동일한 힘이 태양으로부터 행성이 생겨나게 된 원인일지도 모른다고 라플라스 (Laplace, 1749~1827)가 제안한 이후, 자연 과정 속에서 신이 하는 역할은 더 뒤로 밀려났다. (중략)


과학의 발전이 초래한 다른 결과는 인간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지위에 대한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일이다. 중세의 세계관에 따르면 지구는 하늘의 중심이며, 만물은 인간과 관련된 특정한 목적을 가졌다. 뉴턴의 세계관에서 지구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행성에 불과하며, 천문학적 거리는 너무나 광대해서 지구는 상대적으로 핀의 끝만큼 작아 보였다. 거대한 우주 체계가 전부 핀 끝에 있는 작은 인간을 위해 계획되었다는 생각은 그럴듯해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과학의 일부가 되어 버릴 정도로 친숙한 목적 개념은 과학적 탐구 절차에서 제거되었다. 누구든 여전히 하늘이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을지도 모르지만, 천문학적 계산을 할 때 종교적 믿음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세계에는 목적이 있을지 모르지만, 과학적 설명에 목적 개념이 더는 들어올 수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인간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는데도 사실상 정반대 결과를 낳았던 까닭은, 과학의 승리가 오히려 인간의 자존심과 긍지를 되찾아 주었기 때문이다. 멸망의 기로에 선 고대 세계는 도덕적 죄라는 의미에 사로잡혀 길을 잃었고, 그것을 억압된 형태로 중세에 전해 주었다. 신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일이 정당하고 신중한 태도인 까닭은 신이 자만에 빠진 자를 응징하기 때문이다. 흑사병과 홍수, 지진, 튀르크족과 타타르족, 혜성 등이 암울한 세기에 혼란을 가중시켰고, 겸손에 겸손을 더하는 길만이 현실을 위협하는 대재난을 막아 줄 듯했다. 그러나 인간이 마침내 과학의 승리를 쟁취하게 되자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기는 불가능해졌다.


자연과 자연의 법칙이 어둠 속에 놓여 있네,

신이 "뉴턴아, 있어라"라고 말하자, 모든 것이 밝게 드러났다네.


그리고 지옥의 저주에 대해 말하자면 그토록 광대한 우주를 지은 창조주가 신학상 사소한 잘못 때문에 인간을 지옥으로 보내기보다 더 나은 일을 예비해 두었을 것이다. 가리옷 유다는 지옥에 떨어졌을지 몰라도, 뉴턴은 아리우스 파(an Arian)였지만 지옥에 떨어졌을 리 없다.


이렇게 인간이 자기만족에 도취된 데는 당연히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작용했다. 타타르족의 침략은 아시아 지역에 국한되었으며 튀르크족의 위협도 점차 약해지는 시기였다. 핼리는 혜성 출현의 신비를 풀어 시시한 현상으로 만들었고, 지진이 여전히 가공할 만한 현상이었지만, 과학자들은 지진을 두려워하고 한탄만 하지 않고 흥미로운 연구 대상으로 받아들였다. (중략)


양자 역학이 등장하기 전에는 뉴턴이 제안한 운동의 제1법칙과 제2법칙*이 의도한 핵심 내용, 바로 역학 법칙을 가속도로 나타내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런 수정도 하지 않았다. (중략) 양자 역학이 일으킨 변화에 대해 말하자면, 변화는 의미심장했으나 여전히 어느 정도 논란과 불확실성의 여지가 있는 문제다.


이제 뉴턴의 철학에 일어난, 반드시 언급해야 할 변화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절대 공간과 절대 시간의 포기다. (중략) 공간과 시간을 시공간으로 통합한 상대성 개념은 갈릴레오나 뉴턴의 연구 결과로 탄생한 근대적 우주관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2. <러셀 서양철학사>, 제3권 근현대 철학, 9. 데카르트, 888p


「의심하는 과정에 다소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고 예견했기 때문에, 의심을 감행하는 동안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수용한 규칙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규제하기로 결심한다.」


3. <러셀 서양철학사>, 제3권 근현대 철학, 10. 스피노자, 905p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은 우리 자신에서 비롯되는 한에서 선하고, 외부에서 비롯된 사건만 우리에게 악하다. "어떤 인간이 작용인으로 영향을 미쳐 일어난 모든 사건은 필연적으로 선하기 때문에, 외부 원인으로 일어난 경우를 제외하면 인간에게 악이란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분명히 우주 전체는 외부 원인들의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전체로서 우주에 악한 사건은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다. "우리는 우주적 자연의 일부이고, 우주적 자연의 질서에 따르게 마련이다. 우리가 이것을 명석하고 판명하게 이해하면, 지성으로 정의되는 타고난 본성의 일부, 달리 말해 우리 자신의 더 나은 부분은 우리에게 닥친 일을 자신만만하게 묵묵히 따를 테고, 묵묵히 따르는 가운데 지속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중략)


스피노자는 네가 자신에게 닥친 불운을 현실의 일부, 바로 태초부터 종말까지 이어진 인과 체계의 일부로 바라보면, 너의 불운이 너에게만 불운일 뿐이며 우주적 차원에서 불운이 아니고 너에게 닥친 불운은 궁극적 조화를 이루기 위한 일시적 부조화일 따름임을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수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특수 사건은 각각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고, 전체 속으로 흡수됨으로써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잔인한 행동은 각각 영원히 우주의 일부이며, 나중에 일어난 어떤 일도 잔인한 행동을 악이 아니라 선으로 만들거나 잔인한 행동을 일부로 포함한 전체에 완벽성을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관성의 법칙 : 밖에서부터 힘을 받지 않으면 물체는 정지 또는 등속도 운동 상태를 계속한다는 법칙. 뉴턴의 제일 법칙이다. [표준국어대사전]

* 가속도의 법칙 : 운동하는 물체의 가속도는 힘이 작용하는 방향으로 일어나며, 그 힘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뉴턴의 제이 운동 법칙.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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