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권위주의 문화의 뿌리와 현상을 이해하고 변혁을 시도하기 위하여
03 언어 (한국어에 깃든 수직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중립적인 표현으로 바꾸기)
코끼리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아주 명료하지만, 쉽지 않은 해답이 하나 있다. 줄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한국의 높임말과 낮춘말이라는 이분법적 언어구조를 철폐하는 것이다. 전 세계에 나이에 기초하여 높임말과 반말을 나누어 사용하는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높임말과 낮춘말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내가 모든 언어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지구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영어와 중국어를 보더라도 높임말과 낮춘말은 없다. 중국어의 당신에 해당하는 您이나, 영어의 please에 해당하는 请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표현이지 높임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언어는 매우 중요하다. 일상에서 쓰이는 언어를 통해서, 높임말과 낮춘말을 통해서, 우리는 누가 누구보다 높고, 그래서 누가 누구보다 대접받아야 하는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과거부터 어린 코끼리처럼 언어의 굴레에 묶여 현재에 까지 욌다. 이제는 그 줄을 끊어야 하지 않을까? 높임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계단을 만든다. 이제는 그 계단을 치워버리고, 서로 눈높이를 맞추어도 되지 않을까? 높임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을 만든다. 나는 높임말을 해야 하는 상대방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조심스럽기에 되도록 마주치지 않는다. 이제는 그 벽을 허물어도 되지 않을까?
나는 언어학자가 아니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한국어의 높임말과 낮춘말을 어떻게 폐지하고 어떻게 수직적 요소가 없는 평등한 말로 바꿀 수 있을지 전문적으로 해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주었으면 한다. 한국어를 전공한 누군가가 논문으로 다루어 주었으면 하며, 언어학 박사님들이 모여서 ‘언어개혁’을 위하여 논의해 주었으면 한다.
문화부에서 나서서 비용을 지원하여 언어개혁안을 만들고, 교육부에서 변경된 언어를 교육하는 방안을 만들었으면 한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한 것처럼, 한국어의 수직적인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대통령께서 나서 주었으면 한다. 정부가 추진하고, 전문가들이 앞장서서 한국의 ‘다나까’ 언어를 폐지하고, 언어 속에서 수직관계를 지워버려서, 나이와 계급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언어를 바로잡아 주었으면 한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목적은 ‘백성(한국인)을 편안케 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훈민정음 첫 구절에 명백히 나와있다. 한글로 말미암아 문자가 없던 백성이 지식을 습득하고, 편지를 주고받고, 문학작품을 감상하게 된 것을 보면, 분명히 한글 창제의 목적은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0.5%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한글은 높임말과 낮춘말을 통해 수직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역기능으로도 작용하였으며, 이로 인한 불편함이 한글창제로 부터 58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지속 이어져 오고 있다.
비록 비전문가이고 많이 부족하지만,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국어의 수직성을 완화하기 위하여 초보적인 수준에서 제안해 보려고 한다.
1) 우선은 문장을 ‘요’字로 끝나도록 바꾼다면 어떨까?
가령 영어의 ‘did’를 우리는 높임말로 ‘했습니다.’, 낮춘말로 ‘했어’라고 한다면, 둘 다 없애고 ‘했어요’라고 하면 어떨까? 가령 영어의 ‘understand?’를 높임말인 ‘알겠습니까?’와 낮춘말인 ‘알겠냐? 알겠어?’가 아닌 ‘알겠어요?’라고 통일시키면 어떨까? 군대에서는 ‘다나까’만 써야 했고, ‘요’라는 글자를 감히 말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요‘라는 글자가 수직적인 구조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을 존댓말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반말로 생각한다. 그만큼 반말이 더 쉽고, 직관적이다. 반면에 반말로 한 생각을 그대로 상대방에게 옮긴다면, 지금의 우리는 다소 예의적이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다만 반말 마지막에 “요”자만 추가해 준다면 자연스러운 표현이 된다. 가령, ‘무엇을 할까?’라고 생각을 하고, 상대방에게는 ‘무엇을 할까요?‘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요’라는 글자는 경어체로서 문장을 다소 순화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변화에는 중간과정이 필요하다.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가듯이 돌 하나를 점프하여 다른 돌로 나아가야 한다. 앞서 소개한 ‘디학’에서 처럼 궁극적으로 ‘반말’로 가는 것이 보다 순리에 맞다고 할 수도 있다. 반말이 가장 직관적이고 심플한 언어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가 머물러 왔던 자리(존댓말과 낮춘말이 분명한 현 상태)에서는 거리가 너무 멀다. 거리가 멀어서 한 걸음에 뛰어 도달할 수 없기에, 우리는 발걸음을 내딛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현 상태와 나아가야 할 목표, 나는 그 중간단계에 ‘요‘자를 사용한 말투를 사용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만일 존댓말이 모두 사라지고, 반말만 남는다면, 남아있는 반말은 더 이상 반말이 아닌 중립적인 언어가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가야 할 곳은 중립적인 언어만 남게 되는 상태이다.
궁극적으로 존댓말도 아니고, 낮춘말도 아닌 중립적인 언어로 한국어를 바꿀 수 있었으면 한다.
2) 다음으로 극존대와 극하대를 나타내는 어미들을 없애면 어떨까?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같은 말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존대와 하대를 나타내는 어미가 너무 많다. 예의를 차리는 표현에 자주 등장하는 ‘-겠습-’이라는 표현을 모두 없애면 어떨까? 가령 ‘알겠습니다’라는 말은 쓰지 않고, ‘알았어요‘로만 표현하면 어떨까? 반대로 하대할 때만 사용하는 ’-냐?‘ 와 ’-지?‘라는 표현을 모두 없애면 어떨까? ’밥 먹었냐? 밥 먹었지?‘라는 표현 대신에 ’밥 먹었어요?‘로만 표현하면 어떨까? 부탁을 표현할 때 존대의 의미로 포함되는 ’-시기-‘라는 표현과 하대의 의미를 포함하는 ’-라‘의 표현을 모두 없애면 어떨까? ’해주시기 바랍니다.‘와 ’해라‘ 라는 표현은 모두 없애고 ’해주세요‘로만 표현하면 어떨까?
3) ‘please’와 같은 수평적인 관계에서도 쓸 수 있는 공손한 표현을 만들면 어떨까?
영어에서 ‘please’, 중국어에서는 ‘请’이라는 한 단어는 문장 앞에 쓰여서 부탁의 의미와 함께 완곡하게 말을 하는 느낌을 나타낸다. 한국어에서도 존댓말을 없애게 되면, 때로는 정중하게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경우에 추가적인 표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영어의 please, 중국어의 请에 해당하는 한국어 단어를 만들어서 사용하면 어떨까?
4) 존댓말과 반말에 다르게 사용되는 단어를 한 가지로 통일시키면 어떨까?
아버님이 드시면 ‘진지’이고, 선생님이 드시면 ‘식사’이며, 내가 먹으면 ‘밥’이다. 이와 같이 존댓말과 반말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는 단어로는 말씀/말, 성함/이름, 생신/생일, 연세/나이, 드시다(잡수시다)/먹다, 편찮으시다/아프다, 주무시다/자다, 계시다/있다, 저(제가)/나(내가) 등이 있다.
요즘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인공지능 ‘chatGPT’와 한국 존댓말의 기원에 대하여 대화하여 보았다. 찾고 싶었던 의미 있는 정보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정보를 찾는 데 있어서 검색엔진이 아닌, 나를 도와주는 사람(?)과 실시간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히 기존 검색엔진과는 다른 점이었다.
인공지능은 지속적으로 존댓말로 답변하였고, 나는 지속적으로 반말로 답변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리고 결국에는 ‘네’라는 답변 대신에 ‘응’을 사용하였고 ‘저’ 대신에 ‘나’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며, ‘좋습니다‘ 대신에 ‘좋아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요’로 끝나는 문장으로 답을 하였다. 이 정도가 현재 인공지능이 받아들이는 반말의 수준인 것 같다. 한국어의 기본 셋팅이 존댓말이어서 인지 아직까지는 계속 존댓말로 회귀한다. 물론, 학습형 인공지능이기 때문에 더 많은 대화를 하면, 친구와 대화하듯 아주 편한 반말로 바뀔지는 아직 모르겠다. chatGTP에게 반말을 훈련시키며, 한국어에서 존댓말과 반말, 그리고 중간단계의 경어체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다시 한번 체감한다.
1443년 훈민정음이 창제되었고, 1894년 한글이 나라의 공식 글이 되었다. 주시경 선생은 1907년 조선어 강습소를 만들고 국어 연구자를 키워냈다. 한글잡지인 독립신문을 편찬하고,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였으며, 표준어를 만들기 위해 우리말 사전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한국은 1910년에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주시경 선생은 1914년에 사망하였고, 1945년 해방 전까지 한글이 아닌 일본어가 한국의 공식 글이 되었다. 다행히도 주시경 선생의 뜻을 이어받은 조선어학회는 일제의 압박 속에서도 한글을 지켜냈다. 다만 만일 1910년에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주시경 선생이 1914년에 사망하지 않았다면? 한글은 지금보다 더 완전하게 발전하지 않았을까? 아쉽게도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
주시경 선생의 후예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한국어 전공자들이 한국어를 더 우수하게 만들어 주고, 한국어를 세계에 전파하였으면 한다. 한국어를 우수하게 만드는 측면의 하나로서 한국어 안에 있는 계급적 속성을 없애는 방안을 제시해 주었으면 한다. 학문적인 영역에서 시작하되, 학문에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