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주의와 실존주의
세계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 중에 하나가 신기함이었다. 그만큼 나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는 장면들이 많았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주변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거나, 뭔가 이질적이란 생각이 들 때면 신기하게 바라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너 어디에서 왔어?”라는 질문이다.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에서는 대놓고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관광객이 잘 가지 않는 곳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우리를 경계하기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했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온 이방인이었다.
나는 초원에서 생활하는 줄 알았던 마사이족이 바닷가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모습이 어색했는데, 생각해 보면 거기에서 가장 어색했던 건 드레드 머리를 하고 라멘을 먹고 있던 동양인인 나였던 거 같다.
나는 벤치에 누워있는 물개를 보기 전까지는 벤치의 사용목적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벤치는 사람이 앉아서 쉬는 “자리”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처음 벤치를 만든 사람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을까? 근데 계속 보고 있으니 참 편안해 보인다. 누구라도 잘 사용하고 있는 거 같아 보기 좋았다.
하늘을 날고 있어야 할 새가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막의 모래 속에 알을 낳고 그 알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모래뿐인 사막에 그 새와 알들을 지켜주기 위해 투어 가이드들이 놓아둔 돌들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아프리카에서만 볼 수 있는 줄 알았던 바오밥 나무가 동남아의 브루나이에 있을 줄 상상도 못 했다. 분명 바오밥나무처럼 생겼는데 그럴 리가 없다며 모형으로 생각했다.
나는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가?
남이 정해준 곳에 있는가?
이 글을 쓰면서 “네가 있어야 할 곳”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에 대해 찾아보았는데 본질주의와 실존주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질주의란 인간은 누구나 특정한 “목적“이나 ”자리“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본다.
실존주의란 정해진 본질 없이 태어나며 살아가면서 스스로 존재의 의미와 자리를 만들어 간다고 본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내가 알고 있던 상식과 기준에서 벗어나는 모습들이었던 것 같다. 다양한 곳을 여행하다 보니 원래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본질주의와 내 길은 내가 개척한다고 생각하는 실존주의가 분명 상충되는 부분도 있었다.
마사이족은 초원에 있어야 하고, 벤치는 사람만 앉는 곳이 아니었다. 새는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하늘로 날아 도망쳐야 하고, 바오밥 나무는 아프리카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의 “존재의 의미”와 나의 “자리”는 스스로 찾는다는 실존주의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집트의 오래된 유적 중 일부가 카이로의 박물관에 모여 전시되어 있다던가, 심지어 유럽의 박물관이나 광장에 놓여 있는 것을 보면서 본래 있던 곳에 있어야 더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을 텐데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본질주의에 대한 주장도 수긍이 간다.
사회는 각 개인에게 역할과 위치를 “배분”한다. 직장에서는 직급과 책임, 가정에서는 아들, 어머니, 가장 등의 역할, 학교에서는 성적과 위계 등이 있는 시스템 안에서 “네가 있어야 할 그곳”은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과 위치이다.
1년 반동안 나는 주말만 기다리는 직장인도 아니었고 집안의 대소사를 함께하는 가족의 일원도 아니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보니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