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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타르트 Nov 11. 2024

찰나여서 찬란했던 우리의 봄날




닫아두었던 블로그를 다시 열었다. 어느새 한참이나 지나 있었던 시간 속에 나와 그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 공간을. 결혼 준비과정부터 신혼의 일상, 그와 함께했던 날들이 글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때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날의 우리가 어떤 순간에 웃고 있었는지 그 글들을 확인하는 일이 두려워 나는 그 블로그를 닫고 모든 글을 비공개로 돌린 채 한동안 접속하지 않았다. 다시 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지나니까 문득 그때의 나 자신이 궁금해진 걸까. 용기를 내어 블로그에 접속했다.

화면 속에서 나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도 언제나처럼 따스한 미소로 나와 함께 있었다. 그 시간은 멈춰 있었고 글 속의 우리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댓글에는 나의 행복을 부러워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의 슬픔에 함께 눈물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치 시간이 이곳에서만큼은 흐르지 않은 것처럼.



특히 결혼 100일을 기념해 함께 다녀왔던 거제도 여행 이야기는 내 블로그 글 중에서도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거제도 여행은 특별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완벽한 날들이었다. 파란 하늘과 따뜻한 바람, 봄 한가운데에 우리가 있었다. 그날의 모든 순간이 우리에게 기울어져 있는 듯했다.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고 열심히 검색한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숙소에 도착해서 잠시 낮잠을 청했다. 그리고 호텔에서 저녁을 먹은 후 우리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크게 싸웠다.

지금 돌아보면 별것 아닌 일이었을 텐데 그날은 어쩐지 평소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싸움 뒤, 호텔 방 안 공기는 처음 도착했을 때와는 전혀 달라져 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낯선 면을 처음 마주하며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연애할 때도 싸운 적이 거의 없었던 우리가 부부가 되어 처음으로 크게 부딪쳤고 같은 공간에서 차가운 밤을 맞이했다.


아침이 되자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결혼하고 이렇게 여행하러 온 게 처음인데 서로 마음 상하게 하지 말자. 내가 잘못했어. 오늘은 재미있게 잘 보내고 집에 가자."

"그래, 나도 미안해. 별일 아닌데 괜히."

그렇게 우리는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하며 화해했고 계획대로 지심도로 향했다. 사실 우리가 거제도에 간 이유는 동백꽃이 유명한 지심도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날 우리는 지심도를 한 바퀴 구경한 뒤 정상에 있는 작은 매점에서 막걸리와 파전 그리고 라면을 두고 마주 앉았다. 막걸리 한 잔에 쌓였던 서운함도 조금씩 풀렸고 따뜻한 라면 국물을 삼킬 때마다 싸늘했던 마음도 스르르 녹아내렸다. 우리는 서로 어제의 일을 사과했고 앞으로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순간 바람이 뺨을 스치고 살갗에 닿는 기운이 얼마나 시원하고 부드럽든지. 그 순간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마치 내일도, 그 이후의 날들도 항상 우리 앞에 펼쳐져 있을 것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우리는 정상에 앉아 서로의 생일이 있는 매해 3월엔 바빠도 꼭 시간을 내어 여행을 다니자고 약속했다.


돌아오는 배 위에서 나는 여전히 들뜬 기분이었다. 뱃멀미가 심해 늘 잔뜩 긴장한 채 도착시간만을 바라보던 나였지만 그날은 짧은 여정이라서였을까 아니면 그와 함께했던 시간이 너무 즐거웠던 탓이었을까. 푸른 물결이 배 아래서 출렁이는 소리도,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도 마치 나를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다. 내 블로그에는 그날의 기억이 많은 사진과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그 사진들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마저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런 이벤트가 있던 날만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날의 끝자락에도 늘 그가 있었다. 아무리 더워도 포근한 이불을 꼭 덮고 자야 하는 나를 위해 그는 자다가도 내가 이불을 잘 덮고 있는지 확인했다. 혹시 발이 차가운 건 아닌지 잠결에도 내 발을 살짝 만져보고는 수면양말을 신겨 주곤 했다. 내가 묶고 잔머리가 풀려 얼굴을 덮으면 그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나는 그 작은 행동이 사랑이라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그가 나에게 준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던 글을 다시 읽을 땐 가슴이 찌릿했다.


내 블로그는 내가 임신한 이후로 멈춰 있었다. 그때의 난 입덧이 너무 심해 블로그를 잠시 멈췄을 뿐이었는데 언제든 다시 육아와 우리의 이야기를 함께 기록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의 투병 이야기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편하게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블로그는 몇 년이 지나도록 열리지 않았다. 아니, 열 수 없었다.

그때 우리는 그 찬란한 순간들이 얼마나 덧없이 빠르게 사라질지 알지 못했다. 너무나 화창하고 눈부시기만 했던 그 봄날의 우리가 함께 보낼 시간이 그렇게 짧을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가 떠난 후 이렇게 남아 있는 기록들이 너무 싫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행복했던 우리가 나의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질 때마다 혼자만 남아 있는 나의 존재가 미웠다. 그 기록들이 너무나 선명해서 오히려 그 시절을 바라보는 일은 기억 바늘들이 내 온몸을 돌아다니며 찔려대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의 기록들이 우리 시간의 찬란함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해주는 것 같다. 그 순간들은 더 이상 아픔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짧고도 빛났던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기억하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이 너무나 짧았기 때문에 그래서 더 눈부시게 기억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찰나의 봄날이기에 더 찬란하게 빛났던 우리의 청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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