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거기 병원 응급실에서 안 받아준대요”
우리 병원도 나름 대학병원이지만 우리나라 굴지의 대학병원들에 비하면 초라하다. 우리나라 굴지의 대학병원들의 진료능력은 정말 뛰어나다. 하지만 그 대단한 대학병원에 다닌다고 해서 과연 내가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 그 대학병원에서 내가 잘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사실 잘 모르는 사실인데,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굴지의 대학병원들은 항상 응급실과 중환자실이 환자로 넘쳐서 자리가 없다. 그래서 정말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 내가 계속 다니던 그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대부분은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현실이다.
응급실에서 간혹 환자들을 진료할 때 제일 곤란한 경우가 다른 대학병원을 열심히 다니고 있는 환자가 아파서 온 경우다. 단순한 증상으로 온 경우야 간단한 처치만 하고 집으로 돌려보내지만 간혹 심각한 문제로 우리 병원 응급실에 오는 경우도 있다. 유명 대학병원들은 굉장히 많은 수의 항암환자, 이식환자, 심혈관계 환자들을 시술하고 관리하고 있다. 대형 대학병원 환자들 대부분은 그 명성 때문에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유명 대학병원을 찾아다닌다. 문제는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는 다니는 대형 대학병원이 아닌 대개는 근처 병원 응급실로 가게 된다. 그 먼 거리를 119가 호송해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근처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나면 환자분들 대개는 자기가 그쪽에서 쭉 치료받았다고 원래 다니던 S병원, A병원 등으로 이송해 달라고 한다. 그 병원에서는 받아 줄 리가 없지만 말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심장질환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병원에서 시술받은 분이 두근거림이 심해서 119 통해서 우리 병원 응급실로 오셨다. 응급처치 이후 추가 시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환자분은 당연히 자기가 원래 다니는 S대학병원에 모든 기록과 자료가 있다고 하면서 그 병원으로 이송을 요구하였다.
그러면 어차피 안 받아줄 것을 알지만 그 병원에 우선 연락을 해본다. '혹시 자리가 남아서 환자 이송 받아줄 수 있을까요?' 그럼 답변이 뭐라고 오느냐
‘만약 환자 상태가 위중하면 이송 중에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어서 그쪽 병원에서 처치해야 하고 환자 상태가 위중하지 않다면 굳이 이쪽으로 안 와도 되겠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답변이 온다. 이 이유는 무엇일까. 굴지의 대학병원은 항상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에 자리가 없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계속 다니던 환자도 받아주지 않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열심히 멀리서 진료를 보러 다닌 환자들이 정작 중요할 때는 도움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 번은 똑같은 상황이었다. 우리가 그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자리 없다고 안 받아준다고 못 간다고 말렸지만 막무가내로 응급실에서 환자 보호자가 소란을 피워 어쩔 수 없이 한번 그 대학병원으로 앰뷸런스 태우고 보낸 적이 있었다.
보호자는 자신이 있었다. ‘환자분이 과거에 지역 정치인이어서 그 A대학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그 환자는 가서 어떻게 되었을까.. 몇 시간 동안 그 A대학병원 응급실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들어가게 해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결국 엠뷸런스 타고 우리 병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뒤 공문이 그 A대학병원에서 날아왔다.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 보내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게 현실이다. 당신이 다니던 대학병원이 당신을 받아주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학병원은 정말 아무나 받아주지 않는다. 그냥 지인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도 그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진료 보려면 어떻게 하냐고. 유일한 방법은 본인이 앰뷸런스가 아니고 직접 차 몰고 가서 거기 응급실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진료를 거부할 수는 없기에 정말 응급실에 환자가 직접 걸어서 들어가면 안 받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타 병원 통한 이송은 자리가 남지 않는 한 받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걸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라면 애초에 응급환자가 아니지 않나. 그리고 자리는 항상 없다.
소위 유명 대학병원에서 항암 하는 환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사람들이 과연 죽을 때 전부 그 유명 대학병원에서 죽을까.. 천만의 말씀… 대부분 마지막이 되면 그 대학병원에서는 더 해줄 것이 없다고 집 근처로 보내서 죽거나 아니면 응급상황으로 악화되어서 집 근처 병원으로 가면 원래 다니던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아서 거기에서 죽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큰 문제는 중환자실 자리의 부족이다. 응급실 자리도 부족하지만 이송환자를 받지 않는 이유는 중환자실 자리가 모자라서가 더 크다. 다른 병원에서 이송 올 정도라면 대개는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한 경우이다. 하지만 유명 대형병원 중환자실은 애초에 일반병실에 있다가 나빠진 환자들로 이미 다 차고 큰 수술이 예정된 환자들을 위해서는 몇 자리는 비워두어야 한다. 다른 병원에서 이송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다.
의사들도 자기 환자를 끝까지 책임지고 싶어 한다. 자기를 믿고 치료를 지속했는데 누군들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대학병원 의사들이 책임을 회피하기에 안 받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의사 본인이 중환자실에 가서 침대와 기계 하나 새로 사서 가져다 놓고 그 환자를 진료 돌볼 간호사 인력을 만들어놓지 않는 이상 자리가 없다고 하면 방법이 없다. 중환자실을 많이 짓는 것은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환자 한 명을 보기 위해 들어가는 인력과 장비를 생각하면 당연히 중환자실을 확장할 이유가 없다.
무조건 수익을 추구하는 유명 대학병원들의 탓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도 부익부 빈익빈이다. 명성이 드높은 곳은 더 사람이 몰리고 지역의 일반 병원 응급실은 한가하다. 더 좋은 곳에서 최고의 치료받고 싶어 하는 환자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곳에서 다니면서 어느 순간이나 본인이 위급한 상황에서 그 대학병원이 항상 팔 벌리고 치료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버리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