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과 소통

상실의 시간 감성 테마시

by 정하

중력과 소통

-그날 이후 연작시 3편-


그날 이후

나는

마음 정착할 데 없이

허공에 떠다녔다.


그러다가

어깨에 무게가 느껴졌다.

무거운 추가 매달려

발이 땅에 닿았지만

등이 굽어졌다.


손에 들려 있던 것들이

언제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는지

빈 손이 움켜쥐어졌다.


베란다의 화분은

돌보지 않는 손길로

천천히

메말라가고

흙 위에 작은 균열이 일어나

실금이 보였다.


새 한 마리,

부리에 무언가를 문 채

낮은 하늘을

가로질러 갔다.


영화를 보았다.

중력을 잃은 사람이

끈 하나에 의지해

우주의 적막을 건너고 있었다.


책을 펼쳤다.

공중 분해되었던 활자들이

웅웅거리며 떠돌아 다니다

내려앉았다.


암호 해독하듯이

몇 줄을 읽어 보니


절망 끝에서도

따뜻한 소통을 이어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


문자 몇 개를

손에 꼭 쥐었다.


시간은 여전히 멈춰 있었고

하늘도 낮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땅은

아직

식지 않았다.


한 모금 물을 마시고

남은 물을

화분에 주었다.


며칠 뒤

작은 금 사이로

무언가

움틀거리고 있었다.


난 아무도 부르지 않고

빈 의자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기울어

그림자도 길어지고

바람결도 달라지고 있었다.


그때,

먹통이었던 액정 위에

알림 하나가

조용히 떴다.


“잘 지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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