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쌓일 우리의 매일
10년 일기장을 쓰고 있다. 2023년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은 올해로 2년 차에 접어들었다. 1년 차 때는 그저 매일을 성실히 기록할 뿐이었는데 2년 차가 되니 일기장이 제 몫을 해내기 시작했다. 펼칠 때마다 작년의 오늘, 그 순간의 나를 마주하는 기분이 퍽 달콤했다. 1년 내내 촘촘히 기록했던 2023년에 비해 2024년 올해는 일기를 들추는 일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간간히 펼칠 때면 약속한 듯 작년의 내가 올해의 나를 기다리고 있었느나 새로운 기록을 남기기보다는 그저 과거 여행만 실컷 하고 백지의 오늘을 남겼다. 죄책감까지는 아니었으나 올해의 오늘이 자꾸만 공백으로 남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차였다.
주말,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아동도서전에 방문했다. 자칭 책을 좋아한다는 아이와 몇 바퀴를 돌며 보고 싶은 책들을 실컷 구경하고 흥미로운 행사에도 직접 참석했다. 원하는 책을 고르면 사 주겠노라 선포했더니 아이는 부스에 전시된 대충 보지 않고 유심히 펼쳐보고 뒤져보았다. (책을 이리저리 뒤적이고 읽을 여유를 선물하는 부스의 자유로운 분위기들에도 감사했다.) 아이는 한참 고민 끝에 다이어리를 골랐다. 1년 일기장, 3년 일기장, 5년 일기장에 대해 설명을 듣고 한참 고민하더니 수많은 테마 중 어린 왕자 테마로, 기한은 3년인 일기장을 덥석 손에 쥐었다.
무수한 책 앞에서는 오랜 시간 고민하고 이내 고개를 젓던 아이가 일기장 앞에서는 의지가 확고했다. 안 될 것 있나. 흔쾌히 결제를 했다. 아이는 어깨를 잔뜩 부풀리고는 나를 향해 눈을 반짝였다. 아이가 고른 일기장에는 매일매일 다른 질문들이 적혀있었다. 같은 질문에 대한 3년 치의 답이 쌓일 터였다. '사실 엄마도 10년 일기장을 쓴 지 2년 됐어.' 그 말에 아이는 훨씬 더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코평수가 두 배로 넓어졌다. 내년 그러니까 2025년 1월 1일부터는 자신과 함께 매일을 쌓자는 약속을 먼저 건넨다. 그러마 약속하는데 이상하게 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그냥 말로 설명했더라면 '그런 게 있어?' 대수롭게 넘겼을 아이가 현장에서 직접 보고 고른 3년 일기장. 아이와 매일 식탁에 마주 앉아 하루의 마무리를 함께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설렘. 읽는 삶뿐 아니라 쓰는 삶, 기록하는 삶에 아이가 조금 더 스며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어쩐지 우리의 평범하고 안온한 미래가 성큼 다가온 기분에 발끝이 간지러웠다.
올해의 마지막 12월. 아쉬움 대신 기대로 채우며 시작한다. 내년 1월이 되지 않았어도 벌써 내 마음은 충만하다. 몹시 기쁜 12월의 첫 월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