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건과 건사

by 밤비



“네네, 진심으로 죄송하고 또 고맙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상대가 먼저 전화를 끊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린다. 호흡도 잠시 멈춘다. 뚜뚜뚜. 통화 화면 종료와 동시에 참았던 길고 긴 한 숨을 내쉰다. 하나의 사건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다. 삶의 무수한 페이지 중 하나의 귀퉁이를 살짝 접어 넘긴다.


몹시 힘든 하루였다. 무엇보다 마음이 힘들었다. 순식간에 무너졌고 속절없이 울었다. 언제나 그렇듯 사건은 예기치 않게 들이닥친다. 쓰나미처럼 거센 돌풍처럼 휘몰아치느냐,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스치느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크고 작은 상처와 흠집을 남긴다. 누군가의 말 한 마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 예상치 못한 상실. 뉴스에 대서특필될 정도의 사건이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일들이 사건이 되어 내 앞을 막아선다.


하루에도 수십 번의 사건이 펼쳐지고 덮인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삶은 사건 없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삶이라는 것이 사건으로 마냥 흔들리기만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삶은 사건으로 흔들리고, 건사로 이어진다.


사건은 대개 밖에서 일어나지만 그 여파는 언제나 내 안에서 자란다. 무수한 사건 안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건사해야만 한다. 때문에 사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내 자신을 건사하는 일이다.


내가 나를 건사한다는 건 퍽 아름다운 일이다. 완벽한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부서진 조각들을 전부 다 원상태로 맞춰놓지는 못하더라도, 그 사이로 아주 작고 사소한 일들을 계속해서 해내는 일이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하루를 살아내며 내 안의 질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때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침묵을 지키는 것도 건사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기도 하고 마냥 울어도 괜찮다. 그것은 약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고 있다는 증거다. 건사라는 것이 거창한 복원이라기보다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매일 조금씩 균형을 맞추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삶의 리듬은 사건과 건사의 교차로 이루어진다. 삶은 사건으로 흔들리고, 건사로 이어진다. 사건이 나를 어지럽힐 때, 건사는 나를 다시 세운다.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또 유연해진다. 아무리 세상이 요란하게 나를 망가뜨려도 내가 나 자신을 건사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괜찮은 삶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자란다. 인생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사건은 예고 없이 다가오지만, 건사는 오직 나의 선택으로 가능한 일이다. 살아남는다는 건 결국 나를 건사하는 일이다. 무수한 사건 속에서도 여전히 나를 챙기고, 밥을 지어 먹고, 다시 하루를 열고, 저녁을 맞이하고, 까무룩 잠드는 일. 그것이 우리가 살아 있다는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증거일 것이다.


keyword
이전 13화휴지 한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