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체리 토마토 나무

방울토마토 이야기

by YOSPAPA

작년 여름, 집 근처 마트에 방문했을 때부터 작된 이야기.


과일/채소 코너에서 방울토마토 한 팩을 사면 모종을 나눠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막내 고모뻘 되시는 직원분께서 카트에 타고 있는 딸아이가 귀여우셨는지,

지나가던 우리에게 굳이 모종 하나를 그냥 주셨다.

딸아이의 주먹만 한 화분에, 내 손 한 뼘 정도의 줄기가 자라 있는 모종이었다.


조금만 눌리거나 치여도 꺾일 것만 같이 위태로워 보여서 받지 말까 고민하다가,

아이에게 주시고픈 마음을 거절하기도 어려워 카트 한 구석에 넘어지지 않게 조심히 실었다.

장 본 물품들과 구니에 같이 담지도 못하고 모종만 따로 조심히 신줏단지처럼 들고 집에 돌아왔다.


때마침 집에 모종을 옮겨 심을 만할, 적당한 크기의 화분과 흙 조금이 있었다.

딸아이 어린이집에서 상추씨를 심어 아이 귀 크기만큼 자란 걸 가지고 왔었는데,

물 주는 때를 놓쳤더니 싱싱하던 녀석이 한순간에 시들어 버렸었다.

상추를 있던 자리에 그대로 덮어 묻어주고 난 그 흙과 화분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상추의 몫까지 잘 자라달라고 방울토마토 모종을 상추가 있던 자리에 대신 옮겨 심어줬다.




바쁘다는 핑계로 따로 해준 것은 없고, 생각날 때마다 일주일에 두세 번 한 컵 씩 물을 부어주었더니

금세 한 뼘 더 자라고 잎사귀가 풍성해졌다.

단칸방 살이는 더 이상 안될 것 같아, 미용화장지 종이각 만한 화분과 흙들을 사서 한번 더 이사를 켜줬다.


그 이후로도 간간히 물만 줬고, 특별히 신경을 써주지는 못한 채 코로나와 여름휴가가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물을 한참 주지 못한 생각이 들어 베란다에 나가보니

웃자란 줄기들이 옆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화단에서 굵은 나뭇가지를 주워와 집에 있던 플라스틱 막대와 같이 덧대주고 나서,

뒤늦은 사과와 함께 잘 자라 달라는 격려를 냈다.


그 뒤 이게 방울토마토인 건지 밀림의 덩굴식물인 건지 헛갈릴 정도로 무성하게 자라나는 걸 보고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이 정도 컸으면 열매 맺는 결실까지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약간의 오기도 생겼다.




온라인의 글들을 찾아보니 열매 맺기를 위해서는 가지치기도 잘해주고 햇빛도 잘 받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꽃이 피었을 땐 수분이 잘되게 하기 위해 손가락으로 살짝 두드려 주라는 조언도 있었다. 식물계 대모님들의 조언을 따르자, 신기하게도 금세 녹색의 열매들이 맺혔다.

식물 영양제도 주니 열매들도 많아지고, 색깔도 주황빛으로 변해갔다.

식물 하나를 키우는 것도 이토록 세심한 관리와 관심이 필요했던 것인데,

의도치 않았으나 사실상의 학대와 방치를 한 셈이었다.


그래도 가을이 다 지나갈 때쯤, 우리 가족은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빨간 열매 몇 개를 선물로 받았다.

맛은 재배의 문제인지, 기분 탓이었는지 그리 달지만은 않았다.

달콤 쌉싸름하다는 표현이 딱 맞을 듯 한 맛.

기분 탓이라는 건 너무나 웃자란 상태에서 열매들을 맺은 방울토마토의 태 때문이었다.

사람으로 따지면 허리가 다 휜 노모의 모습인 것만 같았다.




모진 학대와 방치를 견뎌내고 열매들을 품어냈는데, 의미 있는 마지막을 남겨주고 싶었다.

온라인에서 본 기억을 살려 가장 싱싱해 보이는 열매에서 방울토마토 씨들을 모으고 물에 불려 싹을 틔웠다. 그리고 그것을 계란판에 나씩 심어놨더니, 다섯 남매가 끝까지 살아남아 새끼손가락만큼 자랐다.

조심스럽게 옮겨서 각자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딸아이 친구네가 집에 놀러 왔을 때 제일 건강한 녀석을 잘 키워달라고 먼저 보내주었다.

나머지 넷 중에서도 하나 정도만 다시 키우고 나머지는 잘 키워줄 만한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보낼 계획이다. 방울토마토 오 남매가 각자 어떤 환경에서든 잘 자라나서 삶의 의미를 이어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이야기다.




그리고... 강추위의 시작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열매들을 맺고 있는 나의 체리 토마토 나무.

떠나보내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때가 되면, 근처 야산에 일조량도 양분도 풍족해 보이는 곳에다 묻어주려 한다.


잘 버텨내 줘서 고맙다고. 어떻게든 살아남은 게 의미 없지 않았다고.

모든 살아있는 것은 의미가 있노라는 말이 맞았다 마지막 인사와 함께.




[+ 그리고 몇 달 후의 이야기 : 2023년 5월]

이 글의 시작이 되었던 주인공은 몇 달 전 경상남도 어느 마을에서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여러 곳으로 흩어진 오 남매 중 셋은 각각의 이유로 조금 일찍 모친을 뒤따랐습니다.


나의 조카들과 함께 했던 두 형제 중 하나는 꽃까지 피우고 봄을 맞아 밖으로 떠났으나,

유난히도 길게 지속된 올해의 꽃샘추위를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돌고 돌아 또 다른 상추들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고,

그 상추들은 지금 방울토마토 몫까지 아주 잘 자라고 있습니다.


남은 둘은 여전히 삶의 의미를 이어가며 자라고 있는 중입니다.

그 자체만으로 무한한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봅니다.

모든 생에 경의를 표하며, 다시 한번 작별과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