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생 영희의 고향이야기
1942년 10월 1일은 신제 지역민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진 날이다. 학교의 기틀을 마련하고 신제 간이학교의 인가를 받아 마침내 학교문을 연 날이기 때문이다. 그 이듬해 43년 5월 1일 신제 간이학교 개교, 44년 4월 1일 신제국민학교의 인가 절차를 거쳤다.
영희는 초등학교를 1977년 3월에 입학해서 1983년 2월에 졸업한 신제초등학교 제34회 졸업생이다. 우리 기수는 27명이 함께 졸업하였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학생수가 줄어서 결국 40회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1989년 3월 1일 자로 폐교되었다. 당시 창녕군에서 분교를 통폐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단일학교로는 폐교 1순위였다. 그 이유는 인근에 군사시설이 들어와 개발이 제한되고 벼농사 이외에는 별다른 소득창출의 방안이 없는 환경 탓에 젊은 인구의 유출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신제초등학교의 마지막 졸업식에는 12명의 졸업생과 더불어 많은 선배들과 주민들도 함께 참여하여 같이 울었다. 47년 동안 신제에서 가장 보배로운 곳이자 신제 어린이들의 요람이던 학교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애통함을 함께 나누었다. 폐교 당시 전교생은 6 학급에 77명! 그중에서 졸업생을 제외한 남은 재학생들은 학교가 생긴 이래 숙명의 라이벌이던 도천면 도일초등학교로 이관되었다. 신제-도일전 축구경기는 한일전, 연고전에 비할 수 없이 전쟁을 방불케 할 만큼 혈전을 벌였는데 그런 학교로 우리 후배들이 들어갔으니 얼마나 눈치를 봐야 했을지 생각만 해도 비통하기 그지없다. 물론 중학교에 진학하면 영산, 장마, 길곡 보다 가까운 이웃마을인 도천 친구들과 먼저 같은 편이 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항공사진 두 장은 개교 후 10년이 지난 1954년 3월 신제리의 환경을 잘 보여준다. 낮은 산들과 넓은 들, 새못과 장척늪이 있고 그 중심에 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학교는 넓은 운동장과 작은 본관 건물 그리고 사택 건물이 보인다. 당시 교사는 네 칸으로 교실이 세 칸이고 한 칸을 나누어 교장실과 교무실로 썼다. 화장실은 뒤편에 별도로 설치되어 있었다. 학생은 많고 교실은 모자라 두 개 학년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였는데 6학년과 1학년, 5학년과 2학년, 그리고 3, 4학년이 한 교실을 사용했고 윗 학년은 걸상에 앉고 아래 학년은 바닥에서 공부하였다. 저학년의 읽기와 쓰기를 고학년이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신제리의 여섯 마을 아이들이 신제초등학교를 다녔다. 두 번째 항공사진에서 학교의 북쪽에는 '상촌', 늪이 있는 '장척',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중촌', 남쪽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우리 마을 '가현'과 고개 넘어 '덕산' 그리고 여섯 고개를 더 넘어가야 되는 '당포' 마을이 보인다. 그리고 영산-남지를 잇는 도로의 오른쪽에는 도일초등학교 운동장이 훤히 보인다.
1950년대의 교육환경 자체가 열악하기도 했지만 신제초등학교는 더 낙후되어 있어서 설립 후 10년이 지나도 교가가 없었고 가을이면 학교마다 하는 운동회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해마다 운동회를 하는 것, 봄가을에 소풍을 가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것이 어떤 선배님들에겐 6년 간의 간절한 소원이었지만 한 번도 이루지 못한 꿈의 행사였다는 것을, 또 어떤 사람에게는 바닥에 앉아도 좋으니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울며 매달린 학교 교실이었음을 그땐 알지 못했다.
사진은 1973년 운동장 정비 사진으로 어른들과 학생들이 함께 화단을 정비하는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다. 그 이전의 사진은 없지만 40년대, 50년대, 60년대에도 학생들이 집에서 소쿠리나 세숫대야 같은 것을 가져와 도천의 냇가까지 가서 자갈과 모래를 퍼다 날라 학교를 꾸몄던 얘기들을 들을 수 있다. 그분들의 노고로 만들어진 깨끗하게 잘 정돈된 학교를 다녔지만 그것이 선배들의 정성과 땀의 결실인지 몰랐다.
물론 우리도 운동장에서 자갈 줍기, 풀 뽑기, 학교 앞 코스모스 길 조성하기, 퇴비를 위한 풀 모으기, 겨울 땔감 모으기 등에 동원되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한 즐거운 특별 활동의 추억으로 기억된다.
기마전을 하는 사진은 '신제초 80년대 운동회 모습'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사진이다. 본부석의 천막과 학생들이 기마전을 하고 있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학교이지만 만국기도 없이 이렇게 초라한 모습은 절대로 운동회 당일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운동회를 앞두고 전날 마지막 연습하는 장면일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82년 가을 운동회 사진에는 대기 중인 학생들과 학교의 서쪽 버드나무가 보이고 필승을 다짐하듯 청팀 단장이 청룡 깃발을 들고 맨발로 개선문을 지키고 있다. 그물망 없는 축구골대는 경기를 마친선수들을 반겨주는 멋진 개선문이 되어있다.
83년 운동회 사진에는 만국기가 휘날리는 운동장에서 탄성이 절로 나는 멋진 장면이 담겨있다. 사진 1에는 여학생들이 비치 볼과 몸동작으로 대형 꽃 모양을 완성시키고 있고, 사진 2에서는 남학생들이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매스게임을 선보이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사람들의 큰 환호와 박수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관중은 마을이름으로 미리 정해진 응원석에 자리를 잡고 사이다, 김밥과 밤, 계란, 감 등 먹을 것을 준비해 와서 점심을 같이 먹고 자녀들의 경기를 구경한다. 운동회 프로그램에는 노인들의 낚시경기, 장애물 달리기, 밀가루 속 엿 먹고 달리기, 종이에 적힌 사람 찾아 같이 달리기, 부모님과 자녀의 2인 1각, 콩 주머니로 박 터트리기, 공 굴리기, 단체줄넘기, 줄 다리기 등 모두 함께 참여하고 웃고 즐기는 축제의 장이었다. 운동회는 오후까지 이어지는데 모두 마치고 나면 운동을 잘하는 친구들은 상품이 한가득이라 손에 들고 가기 어려울 만큼 많고, 영희같이 개별 종목에서 순위권에 못 드는 학생도 줄다리기, 응원, 팀 단체상 그리고 모두에게 주는 참가상들을 합치면 '상'이라는 도장이 찍힌 공책과 연필등 상품 3~4개는 손에 들고 신나게 집으로 돌아갔다.
사진 1의 배경에는 학교 교문 쪽 게시판과 버드나무와 그 옆으로 플라타너스 그리고 사철나무 울타리가 보이고 사진 2는 서쪽 모퉁이 쪽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다음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학교 실내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신제초 90년대 음악시간'이란는 잘못된 이름으로 교육청 기록물로 올려진 사진이다. 아마도 오르간을 연주하시는 선생님께서 시간이 많이 흐른 뒤 기증하신 사진으로 추정된다. 사실은 영희가 6학년이던 82년에 구성된 4,5, 6학년의 여자 합창팀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영희는 단원에 들지 못했지만 학교대표로 합창대회를 나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칠판의 레이스와 커튼, 잘 가꾼 국화화분이 교단에 놓인 것으로 보아 음악시간이 아니라 학예행사일 임을 알 수 있다. 42년이 더 지난 지금도 합창팀에 뽑힌 저 친구들은 목소리가 곱고 노래를 멋들어지게 잘 불러서 어느 모임에 가든지 노래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능력자들이다.
5학년 겨울,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을 만들었다. 신임 교사로 첫 부임하신 담임(배효균 선생님)께서 남겨주신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다.
졸업사진을 찍던 날 가현마을 친구 셋이서 기념촬영을 했다. 겨울이지만 나무는 푸르고 학교 뒤 탱자나무 담장이 잘 정돈되어 있다.
영희 친구들과 찍은 졸업사진이다. 정직, 예절, 절약의 슬로건을 건 중앙현관을 중심배경으로 하고 교실 난로의 연통과 왼쪽 화단에 사자동상이 보인다. 졸업 후 30년이 지난 2012년 5월에 영희는 저 친구들을 다시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반갑다 친구야~'를 외치며 전국 각지에서 기꺼이 달려와 다시 뭉쳤고 '신제삼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지금도 우정을 나누고 있다. 친구들의 기억을 모아 교가를 재현했고 음원은 영희의 딸과 아들이 2012년에 연주하고 노래했다.
신제국민학교 교가
하늘빛 푸른들에 별이 모여서
영축산의 정기받아 자라는 새싹
그 이름은 아름다운 신제국민학교
손잡고 나아가는 신제어린이
제31회 선배님들의 졸업사진 속에는 영희의 첫 담임이셨던 황금자 선생님과 2학년 김인숙 선생님, 3, 4학년의 2년 동안 맡아 가르쳐주신 박대환 선생님이 계셔서 더욱 의미가 깊은 사진이다.
오래전에 사라진 우리 학교 전경이다. 아직도 저 울타리 너머 운동장에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고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이고 있을 것만 같다.
* 글이 완성되도록 도움 주신 신제초등학교 동문 이배희 선배님(제10회 졸업), 제31회 졸업생 카페지기님 그리고 신제삼사회 동기들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