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언어들
어묵은 으깬 생선살에 밀가루를 섞어 튀겨낸 음식이다. 생선을 좋아하는 진시황이 생선 가시가 나오면 요리사를 처형시키는 바람에 진시황의 요리사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 생선 살 완자다. 이를 일본에서 응용해 오늘날 어묵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을 통해 전국적으로 퍼졌다. 생선살의 배합 정도에 따라 어묵 맛은 달라지는데 가격도 그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길거리 물 어묵은 아직도 가장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어묵 음식 중의 하나이다. 나는 길거리에서 파는 물 어묵을 좋아하는데 오늘처럼 날씨가 쌀쌀한 날에는 더욱 물 어묵이 생각난다.
집으로 가기 전 어묵집에 들렀다. 꽃게와 콩나물로 우린 육수에 맛있는 물 어묵이 그득 하였다. 한 무리의 손님들이 다녀갔는지 못 보던 아저씨가 어묵 꼬치를 정리한다. 아주머니는 그런 아저씨를 향해 조용하게 역정을 낸다.
이유인즉 남편이 손님에게서 어묵 값을 잘못 계산해 받았던 모양이었다. 아내가 화장실 간 사이 손님이 계산했는데 어묵 값 계산을 잘못해 받은 모양이다. 벌써 두 번째 실수인 듯 오늘 장사는 공쳤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남편은 실직이라도 했는지 점잖은 차림에 기가 죽어 아무 말도 못 하고 묵묵히 어묵 꼬치만 치우고 있다. 애써 모른 척하며 어묵을 먹고 있는데 불현듯 어린 시절 기억한 자락이 떠오른다. 어묵 값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기억이다.
어린 시절 학교 앞 문구점에는 물 어묵이 인기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나는 쉬는 시간만 되면 문구점에서 어묵을 먹곤 했다. 추운 겨울날 문구점에서 물 어묵을 사 먹는 것은 또래 아이들의 필사적인 유혹이었다. 쉬는 시간 동안 어묵을 먹는 일은 동작이 빠른 아이만 가능했다. 수업과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은 채 10분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10분 동안에 화장실도 가야 하고 어묵도 먹어야 했다. 교실에서 문구점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으나, 교문을 나서야 했으니 가깝다고도 볼 수 없었다.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면 총알처럼 뛰어가 어묵을 잡는다. 주인은 어묵이 불어버리면 맛이 없다고 꼭 모자랄 정도의 어묵 꼬치만 솥에 담가 났다. 운 없으면 갓 물에 들어간 덜 익은 어묵이 잡혔고 퍼질 대로 퍼진 무 다리 어묵이 걸리기도 했다. 덩치가 작고 왜소한 나는 고학년인 언니들에게 밀려 늘 불어 터진 어묵이 걸렸다.
그날은 고학년 언니들이 수업이 늦게 마쳤는지 어묵 솥에 어묵이 제법 많았다. 크기와 모양까지 비교해 가며 여유 있게 어묵을 골랐다. 맛있는 어묵을 골라 후후 불어 가며 먹고 있는데 너무 오래 고른 탓일까. 수업 시작종이 울려버렸다. 아까운 어묵을 그냥 버릴 수가 없어 그대로 한입에 털어 넣었다. 뜨거운 어묵이 입안에 들어가자 입안은 불이 난 듯 얼얼했고 입천장이 마비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더 급한 것은 선생님이 오기 전까지 교실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즘 들어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어묵을 먹고 늦게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당간당하게 도착해 숨을 몰아쉬며 의자에 앉았는데. 글쎄. 주머니에 동전이 그대로 있지 않은가. 너무 급한 나머지 어묵 값을 지불하지 않고 그냥 온 것이었다. 이번 수업이 끝나면 쉬는 시간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동전을 만지작거렸다. 웬일인지 선생님은 이번 시간에도 그다음 시간에도 수업을 늦게 마쳐 주었다. 마침내 모든 수업이 끝났고 집에 갈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때였다. 경찰차가 운동장 뒤 철봉 가까이에 차를 대고 있었다. 순간 나는 주인이 어묵 값을 지불하지 않은 나를 신고해 경찰이 잡으러 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서워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커튼 사이로 두려움에 떨며 경찰들을 지켜보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날은 어둑해졌고 경찰차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 갈 마지막 버스도 벌써 끊긴 상태였다. 나는 교문 앞을 몰래 빠져나와 집으로 왔다. 다행히 문구점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오리나 되는 길을 걸어서 집에 왔는데 이미 밤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놀다가 늦게 왔다며 야단을 쳤다. 나는 저녁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잠자리로 들었다.
다음날이 되어도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문구점 앞을 지날 때면 주인이 볼까 봐 가방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친구들 등 뒤에 숨어서 문구점을 지났다. 문제는 또 있었다. 시골 학교에서 교문 앞 문구점이 유일했기 때문에 학교 준비물을 사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구점을 들러야만 했다. 날이 갈수록 나는 몸에 힘도 없어지고 점점 처져갔다. 밤이면 경찰에 잡혀가는 꿈까지 꾸었다. 어머니는 이유 없이 아픈 나를 걱정했으나 나는 어머니에게도 사실대로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문구점으로 향했다. 문구점 주인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경찰에게 잡혀갈 각오까지 했다. 문구점 문을 열자마자 고개를 숙이며 동전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사실대로 말했다. 주인은 이야기를 듣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착한 학생이라며 사탕까지 덤으로 손에 쥐여 주었다.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철봉 근처에 있던 경찰차는 담장 근처에 사고가 있어서 온 차였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어묵을 먹을 때마다 어묵 꼬치를 정확하게 센다. 어떨 때는 다 먹은 어묵 꼬치를 한쪽 손에 들고 있을 때도 있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아주 편하다.
어묵 값 계산도 제대로 못 한다며 남편을 타박하던 아주머니가 새로운 어묵을 꼬치에 꽂아 육수 물에 넣는다. 아저씨도 쓰레기통을 뒤적이며 뒷정리를 한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은 어묵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