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만큼 성숙해진다는 건 정말일까?

관계 속 아픔을 성장으로 연결하지 않아도 괜찮다

by 노멀휴먼

우리는 상처를 이야기할 때

늘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그 일 덕분에 내가 더 단단해졌어."

"그 사람이 나를 성장하게 했지."


맞는 말이다.

상처는 때때로 우리를 바꾸고,

이전보다 조심스럽고, 더 깊은 사람이 되게 한다.


하지만 모든 아픔이

그렇게 의미 있게 남는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어떤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지금도 여전히 ‘그냥 아픔’으로 남아 있다.


누군가에게 함부로 말했던 날,

그리고 누군가의 말 한 줄에

며칠 밤을 뒤척였던 날들.


그때의 나는 자라지 않았다.

다만 무너졌고,

그 무너짐 속에서

스스로를 더 작게 느꼈을 뿐이다.


상처는, 반드시 무언가를 남겨야만 의미가 있는 걸까?

그저 아픈 기억으로 남는 건 허락되지 않는 걸까?


누군가와의 끝에서,

나는 "그래도 좋은 배움이었다"고

억지로 마무리하려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한 후에야

관계가 깔끔히 정리될 것 같아서.

마치 아무렇지 않은 척,

한 단계 더 성장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하지만 그 말 뒤엔 늘

텅 빈 마음이 따라왔다.


왜냐면 그건

진짜 내 감정이 아니었으니까.


어떤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그저 ‘아픈 기억’으로만 남는다.


그걸 인정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상처는 때로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지만,

때로는 나를

조심스럽고 경계 많은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 변화가 꼭 긍정적인 건 아니다.

내가 성숙해졌다기보다,

그저 덜 기대하게 된 걸 수도 있다.

덜 표현하고, 덜 다가가고,

덜 믿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의미 없는 고통’을

두려워한다.


그 고통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면

그 시간 전체가 허무해지는 것 같아서.


그래서 자꾸

상처를 포장하려 한다.

"그래도 나는 성장했으니까"

"덕분에 더 강해졌으니까"


그 말들이 틀린 건 아니지만,

꼭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상처는,

그저 상처여도 괜찮다.

그저 아프고,

그저 잊히지 않고,

가끔 생각나서 마음이 무거워져도 괜찮다.


관계에서 받은 아픔은

때로는 설명되지 않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걸 억지로 해석하려 하지 말자.


"그 일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야"

라는 말 대신,

"그때는 정말 힘들었어"

라고 말해도 된다.


진짜 성장이라는 건,

상처를 극복하는 척이 아니라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에서 온다.


그리고 그 용기는,

스스로에게 다정할 때 생긴다.


이제는 아픈 기억을 꺼낼 때

굳이 반짝이는 의미를 붙이지 않는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고,

그때 많이 힘들었고,

지금은 조금 멀어진 채

내 안 어딘가에 조용히 머물고 있다.


상처를 안고 사는 일은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다.

오히려 그걸 억지로 지우지 않고,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진짜 성숙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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