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변명이 아니라 회복의 시작
하루에도 수십 번, 지난 기억이 떠오른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마음속에 작은 파문을 남겼던 순간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상처받았을까,
왜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하고 스스로를 되묻는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남긴 상처가 깊을수록,
‘이해’라는 단어는 너무 멀게 느껴진다.
마치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별처럼.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행동 뒤에 숨은 이유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사람이 처했던 상황,
그때의 마음,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까지.
나는 한때 내 마음속에 그 사람을 끌어안고
끝없는 분노를 품고 있었다.
전화 한 통, 문자를 보내도 대답이 없던 날이면
나는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 됐을까.’
그제야 알게 된다.
그가 나를 아프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엔 그 방법밖에 몰랐다는 것을.
그 사람도 불안했고, 부족했고,
어쩌면 자신조차 상처받은 상태였음을.
이해한다고 해서 상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아물지 않은 흉터는 여전히 남아 있고,
때로는 바람만 스쳐도 쓰라리다.
나는 가끔 혼자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그때 비로소 상처가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이해는,
그 흉터 주위를 더 이상 긁지 않게 만든다.
“왜 그랬을까”라는 끝없는 질문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게 한다.
용서는 변명이 아니다.
그 사람의 잘못을 지우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내 마음의 문을 다시 열어
공기와 햇빛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용서를 시작하는 순간,
나는 과거의 나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
그 손을 놓는 건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선택이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관계의 회복이 아니라
내 마음의 평온이다.
그 평온 속에서야 나는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상처를 준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나는 내 안에 남아 있던
날카로운 조각들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조금 더 단단하고, 부드러운 나를 채워 넣는다.
이해와 용서는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길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되
그 아픔에 잠식되지 않고
조금씩 더 살아 있는 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