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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리 Oct 16. 2024

시작과 끝이 공존하던 날

거기서는 우리 아빠 일 많이 시키지 마 

삶이 하나의 놀이라면 이것이 그 놀이의 규칙이다. 


 22년에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손자가 15명쯤 되는 우리 할아버지는 끝까지 내 이름을 설희라고 알고 가셨을 거다. 우리 할아버지는 감투를 좋아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도 밖에도 잘 나가시고 음식도 잘 사드시고 꽤 건강하셨다. 나이에는 장사가 없는지 내 기억 속의 단단했던 할아버지는 점차 유연해졌다. 그러다가 몸이 안 좋으셔서 요양원에 들어가시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몸이 좋지 않았을 때,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할아버지께 다녀온 적이 있었다. 문 안에서 나오는 할아버지는 전과 다르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웃음을 짓고 있는 할아버지가 정말 낯설었다. 그리고 아이를 보고 내가 처음 보았던 할아버지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증손주는 다를까? 할아버지는 아쉬운 듯 아이의 다리를 연신 만져보셨다. 이를 보는 아빠의 표정은 웃고 있지만 씁쓸함이 한 스푼 담겨있었다.


 그러고 나서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 갔을 때, 믿기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암도 초기에 발견해서 수술도 뚝딱하고 나오셨고 항상 단단한 상태로 계실 줄 알았다. 아이가 어려서 계속 안고 있을 수 없어서 아이는 보행기를 태웠다. 향이 나는 그 상황에 가족들은 씁쓸한 표정을 가지고 앉아있었다. 그 와중에 아이를 보며 배시시 웃는 가족들의 표정, 너무나 대조적인 상황이었다. 삶의 시작과 끝이 함께 하던 어느 날


*첫 문장 출처 :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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