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중학교 성적표 (Report Card)
드디어 초등학교 5학년까지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갔다.
여기서 Middle School은 6,7,8학년만 모여있는 곳이다.
그래도 초등학교보다 훨씬 규모가 커졌고 새로 리모델링을 마친 이 나라에서 보기 드문 새 건물로,
조금 과장한다면 할리우드 영화에 나올법한 시설 좋고 반짝반짝한 명문 사립학교 같은 중학교였다.
음악실에 기타와 드럼, 여러 악기들이 잔뜩 있고,
목공실에는 나무 냄새가 가득하고 여러 기계들과 나무로 만든 작품들이 있고,
무엇보다 복도에 있는 개인 락커들과 그 사이사이 아이들이 편히 앉아 쉬고 떠드는 공간들,
그리고 쾌적한 자연광까지...
아이가 중학교를 들어가 처음으로 쓴 글에 고스란히 아이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을 보았다.
넓고 큰 학교 건물에 많은 아이들, 하얗고 깨끗한 벽과 반짝거리고 삑삑 소리가 나는 바닥을 잊지 못한다고... 긴장감과 불안함이 가득한 아이가 초반에 썼던 글임이 티가 났다.
그리고 그 디테일한 묘사와 감정 표현에 나는 처음으로 놀랬다.
사실 중학교를 가기 전 다른 지역의 중학교를 갈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여기는 합반이 많아 한 선생님이 두 학년을 맡고 있으면 2년 연속 같은 반이 될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번엔 코로나 때문에 같은 반 아이들이 그대로 올라가기도 하여서
어떤 면에서는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낙인 효과라고 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올 때도 있다.
그런데 다행인 건 아이가 자기는 우리 반 아이들이 주로 가는 이 중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 너무 안심이 되고 마음이 놓였다.
보통은 반 아이들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자기가 아이들을 모조리 왕따 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이제는 낯선 곳보다는 자기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자기 의사 표현을 정확히 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그냥 마음이 그랬다.
그래서 새 학교에서 새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는 아이를 지켜보며 또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6학년 선생님은 아이가 항상 그랬듯 또 좋은 선생님을 만나 7학년까지 함께 했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아무 일 없이 순조롭게 중학교 생활이 흘러간 것처럼 보이지만
물론 6학년 초반부터 슬슬 또 여러 일들이 벌어지긴 하였다.
한 아이와 여러 번 싸운다거나 다른 반 아이와 조회 시간에 다툼이 있었다거나
담임 선생님한테 메일 몇 번 교감 선생님께 전화 몇 번이 왔음은 물론이다.
이런 일은 너무나 빈번해서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
야 하건만 아직도 난 손이 벌벌 떨리고 뒷목이 화끈거리며 심장이 두근댔다.
그래도 변화는 있었다.
아이가 스스로 나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며 그 친구랑도 화해를 잘했고 반성하고 있다고
그리고 자기가 그렇게 행동한 것에 대해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지?
처음엔 매우 놀랐으나 그 후로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걸 보고 아... 아직 멀었구나 하긴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은 대단한 변화인 것은 맞았다.
그리고 매번 싸웠던 그 친구와는 지금 절친이 되어있다는 놀라운 사실...
선생님께는 미리 아이가 진단을 위한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었는데
별로 놀라워하거나 신경을 쓰시지 않는 듯했다. 다행히도...
우리 반에 또 귀찮은 애 한 명 왔구나 하는 그런 걱정을 미리 하고 계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검사 후 결과 나오면 말해달라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부탁하시라고...
그리고 6학년 말에 검사를 하게 되었으므로,
그때도 현재 선생님의 체크리스트 작성이 필요했기 때문에 부탁을 드렸더니 선뜻 잘 적어 전달해 주셨다.
그리고 6학년을 지나 7학년이 되고 4개월 정도 지난 12월 말의 성적표까지는
여전히 수업시간에 focus가 어렵고 아이들의 말에 distract 될 때가 많으며
친구들과의 트러블이 조금 있다는 코멘트가 있었다.
그래도 예전과 비교해 보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게 눈에 띄게 보일 정도였다.
여기 선생님들은 report card에 정말 아이에 대한 칭찬을 엄청 많이 구체적으로 쏟아부어 주신다.
선생님들을 만나서 이런 칭찬을 마구 들으면 정말 내가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이다.
우리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똑똑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고
아이들을 도와주려는 마음을 갖고 있는 따뜻한 아이이며...
마지막으로 본인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직접 short term goal을 만들어 열심히 노력 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Strengths and Stretches를 기반으로 성적표에 코멘트를 달아주신다.
두둥!!!
드디어 겨울 방학 2주 후 다시 나간 1월부터 3월까지의 학교 생활을 담은 성적표가 나왔다.
이제까지 이런 성적표는 처음 받아 보았으며 그 순간의 희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선생님은 코멘트에서 이번 학기에 아이가 엄청나게 성숙한 것 같다고 놀라워하셨다.
아이가 사회성이 매우 좋아져서 반 아이들이 다 좋아하고 있으며,
나아가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 리더십을 키우면 좋겠다고 했다.
가장 걱정스러웠던 사회성 부분을 정확히 꼬집어 말씀을 하시니 정말 더할 나위가 없었다.
아이를 칭찬했더니 자기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느냐고 으스댄다.
힘들었냐고 했더니 힘들긴 했지만 그리 막 힘들진 않았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초등학교와 달리 친절하고 재미있는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좋다고...
네가 노력하고 잘하니까 친구들도 좋은 거야...
세상은 그런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