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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van May 14. 2024

캐나다 추천 이유 1

감각이 예민한 아이

한국 공립 초등학교를 1학년으로 마무리하고 캐나다에 와서 이제 아이는 9학년 진학을 앞두고 있다.

6,7년 정도를 살아오면서 아직은 이른 성공담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의 적응 기록을 정리해 보며,

애매한 아이의 캐나다로의 이주 그리고 학교 생활 및 일상생활을 추천한다는 의미이다.




한국 어린이집부터 유치원, 공립 초등학교까지 적응이 매우 어려웠고, 

여러 진단들도 받고 여러 치료들도 끊임없이 받고 약물 복용까지 권유받았던 아이가 

캐나다에 와서는 느리지만 결국 적응하고 현재까지 정상적인 학교 생활이 가능하며,

원만한 교우 관계, 그리고 즐거운 취미생활까지 영유하며 지내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불안함과 망설임 그리고 매우 큰 결심과 도전이었지만, 

아이에게 훨씬 더 행복하고 소중한 유년기 혹은 학령기(?), 청소년기의 삶을 제공해 주었다고 생각하면 

전혀 힘들어하지 않고 몇백 번이고 더 해줄 수 있는 결정이었다.




아이는 편식을 심하게 한다. 

자폐나 adhd, 그 외 여러 진단을 받은 이들은 많은 부분 예민한 기질을 타고 난다. 

모든 감각에서 민감한 성향을 보이는데, 이것을 Sensory Processing Disorder라고 한다. 

시각적 자극 추구를 하거나 청각이나 후각이 심하게 예민하고,

먹는 것을 가릴 수도 있고, 특정한 촉감을 만지거나 밟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다. 

아이도 어릴 때는 거의 모든 감각이 예민하였고 스스로도 힘들어했지만, 

이제는 먹는 것에만 남아있는 듯 보인다

여기서도 Peaky eater라고 불리는 편식쟁이 수준이라고 취급해선 안된다.

한국 사람들이 여기서도 쉽게 하는 말..."3일만 굶겨봐. 뭐든지 다 먹지. 배가 불러서 그래."

이 말은 Seonsory Processing Disorder를 가진 아이의 부모에게 큰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어떤 자폐 아이는 평생 요거트 한 가지로만 연명하기도 한다고 하고 여러 다른 케이스들이 있지만,

아이는 소스가 묻어있는 것에 공포까지 느끼는 수준이다.

김밥, 비빔밥, 볶음밥처럼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또한 다른 아이들처럼 쉽게 곰국이나 미역국에 후루룩 말아먹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토마토 또는 크림 스파게티, 짜장면, 카레, 양념치킨 등등 먹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그나마 오일 스파게티, 프라이드치킨은 먹을 수 있고, 

탕수육, 돈까스, 햄버거 등은 소스 없이 먹을 수는 있다. 

당연히 케첩, 마요, 각종 소스들은 보는 것도 싫어하고 냄새조차 맡길 거부 한다.

이것은 뭔가 그 질감을 싫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요거트와 죽은 물론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묻은 것은 입으로 모르고 들어가더라도 귀신같이 다시 나온다.

물론 패턴에도 없는 그냥 무조건 거부하는 것들도 많다. 같은 재료라도 요리 방식따라 다르다.

맛뿐만 아니라 음식의 색과 같은 시각적인 것과 질감과 같은 촉각적인 것도 포함되는 것 같다.


어릴 땐 김밥집에 들어가기만 해도 냄새 때문에 구역질을 하며 뛰쳐나와야 했지만,

지금은 그 음식들을 먹지는 못해도 지켜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걸 꼭 먹어야 한다는 상황에 처했을 때는 

식은땀이 나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입술이 파래지며 목소리와 손이 마구 떨리는 것을 목격했다.

(나도 위에서 말한 그 쉽게 생각하고 함부로 말하는 한국 사람들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아동 학대와 마찬가지인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답답한 마음에 한 적도 있었다는 것을 실토한다.)

물론 먹었을 경우 그대로 다시 넘어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어린아이들이 먹기 싫은 야채를 먹었을 때 귀엽게 우웩 하며 헛구역질을 하고 

결국은 그냥 씹지도 않고 삼켜버린다는 웃긴 에피소드가 아니다.

올해 아이가 자기도 어떻게든 먹어보고 싶었는지 안쓰럽게 시도했던 때가 생각난다. 

그것을 어떻게든 잘 씹어 넘기고 다 소화가 되고 한참 지나 밤에 잠에 들었다가 

새벽에 갑자기 엄청난 구토로 나온 적이 있다. 

그제야 난 확실히 받아들인 것 같다. 이것은 정신적인 것과 동시에 신체적인 반응이구나...

신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므로 절대 억지로 먹여서는 안 되는 거구나...

 

이쯤 되면 도대체 이 아이는 뭘 먹고 살아가는지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다행히 잘 먹고 건강하다.

우리 냉장고엔 항상 먹던 것들만 들어있고,

그것을 건강하고 담백한 방식으로 요리해 딱 한 가지만 들어간 반찬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이는 특히 여러 나물 요리들을 좋아한다. 

여러 나물들 (숙주, 콩나물, 취나물, 곤드레, 고사리, 청경채, 유초이 등)을 살짝 데쳐 

간장 조금, 들기름만 넣고 먹는다.

그리고 여러 단백질원 (두부, 계란, 질기지 않은 구운 고기, 비리지 않은 구운 생선 등)과 함께 먹는다. 

여러 과일들도 잘 먹는다. 여기는 어떤 특정 과일을 못 먹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이처럼 못 먹는 것들이 많은 민감한 아이들도 캐나다에서는 이상한 취급을 받지 않는다.

다들 자기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잘 요리해서 잘 먹고 잘 성장해 간다.

좀 특이해도 괜찮다. 

이것이 캐나다의 교육 전반에 깔려있다고 보면 된다.


여기 오면 가장 힘들다는 것이 아이들 도시락 싸는 것이라며, 

영양적으로도 우수한 한국 급식 시스템을 극찬하고 한국이 천국이었다고 하는 

평범한 주부들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아이가 한국 학교 급식실 앞에서 맘 졸이고 공포심을 느꼈던 그 시절에 비하면,

(한국은 따로 도시락을 싸가는 것이 안된다는 답변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다시 들어와도 되냐는 문의에도 부정적인 반응을 접한 있다. 한국의 급식 제도는 모든 아이들이 똑같이 먹고 똑같이 건강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취지인 것은 충분히 알겠다. 하지만...) 

자기의 몸에 맞는 한 가지만 싸갈지라도 맘 편하고 건강하게 먹고 자랄 수 있는 이곳이 우리에게는 천국이다.

물론 여기는 각종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이 많고 여러 다른 음식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기 때문에 

급식이 불가능하고 서로 다른 식재료와 식성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인 것은 맞다.

비단 Sensory Processing Disorder를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음식은 개인의 Preference로 인정하고 

모든 음식에 소스 빼고 주세요, 이것은 빼주시고 저것은 따로 주세요 등을 귀찮아하지 않고 

당연시하는 사회가 이런 아이들에게 맞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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