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당한 한국 보이스피싱
이번 주제는 기록을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 좋은 이야기도 아닐뿐더러,
이 일이 벌어진 지 6개월이 다 되어가는 현시점에서도 아직도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보이스 피싱에 관한 이야기이다.
최근 보이스 피싱을 당했다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이 "당했다"라는 단어에는 중간에 눈치채고 끊었다는 사람이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화는 면했다는 사람,
그리고 아예 처음부터 눈치채고 오히려 장난스럽게 반격을 했다는 사례까지 모두 해당된다.
내 기준에 "당한" 사람은 바로 정신적인 충격과 더불어 물질적인 손해까지 모두 당한 사람이다.
슬프지만 바로 우리 가족이다.
한동안 어느 대형 유학원으로부터 정보가 유출되어 캐나다에서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 소식과 더불어 거기에 쓰인 수법까지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국제전화나 보이스톡을 이용하여 한국에 있는 아빠에게 전화가 간다.
엄마나 아이의 개인적인 저장 이름이나 프로필 사진까지 그대로 뜬다.
아빠가 전화를 받으면 엄마나 아이의 목소리가 먼저 들린다.
누가 우리 집에 들어와서 칼이나 총을 들고 협박한다 무섭다고 울면서 말한다.
그다음에 범인이 얼마를 가지고 어디로 와서 누구에게 전달하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죽인다고 하고 돈을 전달할 때까지 전화를 끊지 못하고 계속 들고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스토리를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했다"
현재 한국에 머물고 있는 아이 아빠는 회사 일을 제쳐두고 미친 듯이
약 4시간 정도를 보이스피싱범에게 끌려다녔다.
그동안 나는 아이와 일상생활을 하다가 잠들러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잠들기 직전 전화가 울렸다.
누군가 밖에서 우리 집 번호를 누르면 내 핸드폰으로 연결이 되는데
그날따라 잘못 누르는 벨을 두 번이나 받아서 이번에도 이 밤에 누가 우리 집에 올까 하고 무시했다.
잠시 뒤, 누가 우리 집 문을 부술 듯이 두드렸다. 여긴 나무 문이라 진짜 부서지는 줄...
"POLICE! POLICE! OPEN THE DOOR!!!"
정말 1초 만에 일어나 문 앞에 설 수밖에 없었지만 쉽사리 열게 되지는 않는 목소리였다.
뭔가 착오가 있었겠지 잘못 두드렸겠지 하고 멍하니 문만 바라보고 서있는데 다시 한번 반복되었다.
"OPEN THE DOOR!"
문을 열자마자 나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당겨져 나갔다.
"Are you OKay? Who else is in there? Somebody is in your house? How many?"
그때는 사실 정신없고 잘 안 들렸던 것 같은데,
지금 와서 다시 돌아봐도 이런 질문들이 쏟아졌다는 걸 기억하는 거 보면
그 강압적이고 큰 목소리들이 내 머릿속에 다 하나하나 꽂혔던가 보다.
튕겨져 나온 복도에는 대여섯 명의 큰 경찰들이 무리 지어 서있었다.
내 왼편에는 순하고 친절해 보이는 여자와 남자 경찰,
그리고 오른편에는 무서운 표정과 덩치에 방탄복까지 입은 경찰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큰 기관총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소총, 권총 이런 것도 아니고,
미드에서만 보던 그 커다란 총을 들고 긴급출동하는 SWAT, 경찰특공대 이런 모습이었다.
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오직 손을 모으고 "My son... My son..."만 읊조렸던 것 같다.
누가 우리 집에 마약을 숨겼나, 내 지인이 마약 딜러였고 내가 누명을 쓴 건가...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 아들만 살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My son"만 되풀이했던 것 같다.
나에게 바라던 대답을 듣지 못하자 총을 든 사람들 몇 명이 우리 집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또 아까처럼 고함을 벅벅 지르며, 또 "POLICE! POLICE!" 거리면서...
그러더니 아이 방에서 자고 있던 아이를 깨워 데리고 나왔다.
아이는 그 와중에 신발도 잘 신고 나오더라... 난 맨발이었는데...
나중에 아이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아이는 이미 깨어있었고 무서워서 이불속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경찰들이 자기 방에 들어와서 "GET UP! GET UP! Put your hands up!!"
하며 일어나게 하고 나가라고 했고,
그때 몇몇은 온 집을 다 뒤지고 옷장 다 열어보고 베란다 문도 열고 나갔다 들어오고 난리가 났었다.
"Clear! Clear!" 이 소리가 들리며 다들 아이와 함께 집에서 나왔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자마자 총 든 경찰들은 묻고 따지지도 않고 모두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남아있던 여자 경찰 한 명과 남자 경찰 한 명이
누군가가 우리 집에 들어와서 무기를 들고 협박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고 했다.
내가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하니 혹시 남편이 정신적인 문제가 있거나 알코올, 마약 중독이냐 물었고,
아니라 하니 아무래도 스캠일 수도 있겠다며 남편과 통화를 해보라고 하고 다들 돌아섰다.
다들 돌아가고 나서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국에서 아이 아빠에게 카톡이 왔고 자기가 경찰에 신고했다고...
그 후 우리 안전을 확인했다고 아이 아빠에게 카톡을 다시 보냈으니 연락해 보라고...
손이 벌벌 떨리고 심장 박동이 진정되지 않았고 전화 연결도 잘 되지 않았다.
남편은 경찰이 우리의 안전을 확인했다는 카톡을 받은 후에도 전화를 쉽게 끊지 못했다고 한다.
뭐가 진짜인지 모르겠고, 우리가 진짜 안전한지 이게 정말 보이스피싱이었는지, 이들을 잡을 순 없는 건지,
자기가 전화를 끊지 않고 경찰서로 가면 잡을 수 있는 건지 등등 많은 생각을 했는데,
남편의 말에서 뭔가 다름을 느꼈는지 그들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남편이 회사에서 받은 그 해의 인센티브를 모두 출금해서
그들의 연결책에게 전달하고 난 후였다.
그리고 또다시 돈을 요구했고 현금이 없으면 종로 금은방으로 가서 금을 사라고 해
방금 종로에 도착해 있었던 시점이었다.
남편은 그 사람 얼굴도 다 기억이 난다고 했고 바로 경찰서로 가서 신고를 했다.
몇 달 후 그는 잡혔지만 돈은 당연히 돌려받지 못했고 그는 단지 알바를 한 것에 불과했다.
이 사건 이후 우리 가족은 각자의 트라우마를 안고 간다.
남편은 자기 전 범인의 목소리와 말투가 떠오르고 자신이 저지른 실수로 인한 수치심에 잠들지 못한다.
나는 아직도 문 밖에서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뛰고 다른 집 문 소리에도 모든 신경이 곤두선다.
그리고 실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마치 진짜인 것처럼
누군가 우리 집으로 쳐들어와 협박할 것만 같은 느낌이 정말 몇 달간 지속되었다.
아이는 나랑 대화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경찰은 단지 우리의 안전을 위해 그렇게 한 거다,
우리는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 캐나다 경찰이 이렇게 믿을만하다 라며 날 위로해 주었지만,
아이도 나름의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시간이 지나 지금 생각해 볼 때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어쩔 수없이 돈이다.
물가가 오르고 이율도 오르고 모든 것이 올라 1불 2불에 목숨 걸고 아끼고 있는 그때,
마음의 여유라고는 전혀 없었던 그때,
왜 하필 그때였을까...
보이스피싱범에게 순순히 넘겨줄 그 돈이었으면 내가 한번 펑펑 써볼걸...
그 돈이면 몇 달을 편히 살 수 있었을 텐데...
너무나도 가슴이 찢어진다.
남들은 그 정도면 얼마 안 되는 거다, 다른 사람은 몇천 또는 억 단위도 있댄다며 씨부리지만,
본인이 우리 돈의 반만 잃어버려도 아마 울고불고 억울해할 사람들임을 확신한다.
보이스피싱범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이 세상은 정말 끝도 없는 이벤트의 연속이며,
아직도 얼마나 많은 일들이 나에게 펼쳐질 것인가 생각해 보면 끔찍하다.
남들은 "당하지" 않을 이런 류의 경험은 제발 한 번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