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이런 사인들을 목격한다.
'뛰지 마시오. 들어가지 마시오. 손대지 마시오. 혹은 통화금지, 대화금지, 주차금지' 등등.
도서관과 수영장, 학교와 공원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나 도로 표지판뿐만 아니라 마트 진열대까지 수도없이 지나친다.
종종 금지하고 제한하고 통제하는 문구들에 괜한 반발심이 든적도 있다. 상냥하게 혹은 청유형 문장을 사용하면 어떨까싶었다. 실제 그런 예들도 있다. '잔디를 보호해주세요', '살금살금 걸어요'처럼. 그렇지만 주위엔 명령조의 문구가 대부분이다.
이런 생각도 해봤다.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순 없을까?나은 방법으로 독려하면 되지.
아이를 임신하고 병원진료가 있을 때면 지하철을 타곤 했다. 교외에서 서울행 열차는 배차간격이 뜸해 언제나 만원이었다. 그래도 임산부 좌석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부가 꽉 차서 이동이 불가능하거나 겨우 자리를 찾아도 임산부 좌석엔 누군가 앉아있었다. 때론 어르신이 때론 젊은 남성이 때론 임신하지 않은 여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루는 도저히 서 있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냥 그 자리에 풀석 주저앉았다. 요즘은 흔한 접이식 의자를 챙겼다면 좋았을거다. 배가 나오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고 배가 당겨왔고 몸이 무거워 다리가 저렸다. 사람들이 빠지고 겨우 몸을 일으켜 임산부 좌석에 앉은 여성에게 다가갔다. "실례하지만 혹시 임산부신가요?" 그 여성은 귀에서 이어폰을 빼더니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일어나면 되잖아요?아잇 참." 가방을 뒤적이며 최대한 느긋하게 일어섰다. 그 억울해하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얼마 전 오랜 만에 지하철을 이용했다. 군데군데 핑크색 좌석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달라진 분위기가 반가웠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하차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한 여성이 비좁은 공간을 뚫고 들어와 날렵하게 그 자리에 착석했다. 임산부 배지는 보이지 않았다. 챙겨다니는 경우가 드물기도하다. 초기 임산부일지 몰랐다. 그러나 홀쭉한 배와는 별개로 조심스럽지 않던, 하차한 뒤 잽싸게 계단을 뛰어 오르는 모습에서 어쩐지 씁쓸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안타깝게도 강력한 어조를 사용하면서까지 금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지키기로 한 약속을 소꿉놀이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때문일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려깊고 정직하게 약속을 이행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과도하게 통제하기보단 안 지키곤 못 배길 매력적인 글귀로 주목을 끄는건 어떨까.
언젠가 경고문이 사라지는 날도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