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 아이 밥 좀 먹으라고 말 좀 부탁드려요, 선생님.

by 삽질

어제 친구를 만나고 왔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친구 아이의 담임선생님 이야기가 잠깐 나왔습니다. 2학년인 친구의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께 아이에게 밥 좀 잘 먹으라는 말을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가정에서 해야 하는 지도를 왜 학교에 해야 하냐고 단칼에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 사건 이후로 그 담임선생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됐다고 합니다. 매우 섭섭했다면서요.

학부모이기 전에 교사인 저는 친구의 마음과 그 담임 선생님의 마음 모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서 말해줬습니다. 학부모가 학교를 서비스 업체로 생각하는 현실과 교사들이 그 점을 얼마나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요.

제가 느끼기에 학부모들은 교육을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본인이 원하는 서비스에서 만족을 느껴야 아이에게 교육을 제공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행패를 부리다 뉴스에 나오는 학부모들을 보면 그들이 어떻게 교사와 학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매우 극단적인 경우이지만요.

저는 사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된 서비스가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교육의 디폴트 값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사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돈을 받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사적' 이익 집단입니다. 즉 교육을 좋은 상품처럼 취급해야만 더 나은 이익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학부모의 기분을 성가시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모든 행위는 그들에게 교육적이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자녀가 어떤 행동을 하든 좋은 말로 포장해서 학부모(고객)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문제 학생을 내쫓아 다른 고객들을 안심시키기도 합니다. 몇몇 학부모들은 공립 유치원의 서비스에 불만을 표합니다. 프로그램이 너무 적고 선생님들이 친절하지 않다고요. 그게 교육적이지 않다고요. 이게 현실입니다.

친절함을 제공하는 서비스는 이제 공립 초등학교에서도 강요되고 있습니다. 학생들 생활기록부에 긍정의 말만 써야 합니다. 모든 평가는 잘함과 매우 잘함이 나올 때까지 재시험을 무한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학부모가 아이의 칭얼거림을 듣고 직접 재시험을 요구해오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학교생활에서 작은 불편만 겪어도 학부모는 학교에 전화를 해 불만사항을 이야기합니다. 개별화 수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학교에서 학부모들은 개인이 원하는 바를 끊임없이 담임선생님과 학교에 요구를 합니다. 관리자나 담임 선생님은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그 선은 점점 애매해져만 갑니다. 진짜 필요한 교육이나 훈육은 친절한 서비스에 가려지고 있습니다.

학교에 점점 더 많은 규정이 생기고, 학생 인권이나 교사 교육권과 관련된 많은 법령이 개정되고 있지만 사실상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학부모가 학교를 바라보는 상식 자체가 바뀐 마당에 더 많은 법이 추가될수록 오히려 갈등만 부추기는 꼴이 아닌가 싶습니다. 서로를 향한 불신의 골은 깊어져만 가고요. 결국 올바른 교육을 바라보는 상식에 합의를 보지 못한다면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게 가장 어려운 일이겠지요.)

친구에게 저는 학교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제가 교사이기 때문에 교사를 대변하기 위해서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제 스스로 정말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저는 제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원 시간에 살아서 걸어 나오면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교육의 책임자는 부모이고, 아이 교육의 90% 이상이 부모의 영향 아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부모의 태도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 부모가 학교를 선생님과 학교를 존중한다면 아이도 선생님과 학교를 존중할 것입니다. 학부모가 학교에 불만을 갖고 깽판을 치면 아이도 똑같이 불만을 갖고 깽판을 쳐도 된다고 배웁니다. 이 분명한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위한다면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학교 일에 간섭하는 게 아니라 학교를 믿고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잘못한 게 있다면 먼저 나서서 아이를 훈육해야 하고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교육의 책임자는 부모입니다.

심리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사람은 손해를 볼 때 이익을 볼 때보다 몇 배의 고통을 느낀다고 합니다. 학교나 교사를 향한 심리적 기대가 적을수록 고통보다는 만족감은 커질 것입니다.

제가 친구 아이의 담임선생님이었다면 아이에게 밥을 잘 먹으라고 말하겠다고, 긍정적으로 대답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교육적 철학은 이러하니 가정에서 더 힘써 달라고 반대로 부탁드릴 것 같습니다. 말이란 게 '아'다르고 '어'다른 거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교사로서 학부모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있겠지요. 그리고 교사에게 중요한 건 학교' 분위기'나 '법'따위에 휘둘리지 말고 상식적인 교육 철학을 분명히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이 혼란스러운 교육 현장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학부모님의 요구에 흔들리지도 않고요. 요구사항에 무조건 불만을 갖는게 아니라 상식적인 내용인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서로를 향한 믿음이 사라진 시기에 교육을 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상식이 조금 더 보편화된다면, 서로를 물고 뜯는 행위를 멈춘다면, 함께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냥, 꿈이라도 꿔 봅니다.

keyword
삽질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구독자 110